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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X인터뷰①]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8-14 (수) 14:45 조회 : 1725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심한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품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해온 단체입니다. 1년 과정의 청소년 주말학교인 ‘무늬만 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소년들을 대하는 청년들을 교육하여 그 가치를 확산하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우이동에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편, 네팔에서 10년째 다양한 청년들과 교류하며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품의 지난 20년의 활동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꿈과 철학, 그리고 재미있는 일상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두 편에 걸쳐 올립니다.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의 꿈을 키우고 지지해온 20년 여정
"놀이와 공부의 구분은 없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사진=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목적이 궁금하다.
A.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꿈을 가진 아이가 그것을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꿈이 없는 아이가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원래 아이가 성장할 때 여러 가지 꿈을 만들어주는 곳이 집과 학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꿈을 가장 많이 짓밟는 곳이 학교와 집이다. 학교는 꿈을 키운다기보다 사회에서 규정한 좋은 길을 코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 우리가 만들어보자고 하여 시작했다.
Q. 품이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A. 품은 아무 것도 없이 작은 지하실 공간을 만들어 시작했다. 올해 벌써 20주년이다. 그간 변화가 많았다. 한국 사회에는 게임은 있는데 놀이가 없다.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먼저 놀게 하자는 뜻에서 놀이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음악·연극 등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꿈을 가질 수 있다. 자기 꿈을 가졌을 때 세상에 나가서 내적동기를 가지고 사유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해가며 현재의 ‘무늬만 학교’까지 세웠다.
오랜 과정 끝에 우리가 “이게 해답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지역’이다. 커뮤니티 안에서 아이들을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장차 아이들의 눈은 세상을 보고 지구 전체를 봐야하지만, 성장하는 동안은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 잘 커야한다. 그게 해답이라고 느낀 후 지역에 집중했다.
Q.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기 시작했나?
A. 우리가 먼저 학교나 관공서, 청소년 단체 등에 찾아갔다. 전국으로 쫓아다녔다. 그때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렇게 떠도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불러오게 되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학교와 교육에 대한 품의 접근 방법은 무엇인가?
A. 품이 20년간 활동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훌륭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많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학교 안에는 별로 없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괜찮은 교수님도 더러 있지만 실제로 좋은 교사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밖에 있다. 품은 그런 사람들로 교사로 세운다. NGO·도시개발·사회복지·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는다. 올해에는 또 변화가 있었는데 외부 전문가 대신 동네 강사를 세웠다. ‘무늬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 동네 사람 등이다.
물론 아무런 맥락 없이 강사를 시키지는 않는다. 맥락을 다 이해하는 강사들을 세우거나 강사에게 맥락을 이해시킨다. 공교육에서는 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정해진 강사가 와야 하고, 또 교사의 기준도 엄격하고 많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실제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더 훌륭한 것들을 차단하고 있다.
지역에 함께 있으면 아이들을 돌보기가 좋다. 학교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우리 마을에 목공소가 있다. 전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목공소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모아 목공소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작업도 하고, 마을 사람을 위한 작업도 한다. 우리 고3학생 중 한 명이 대학에 가기는 싫어하는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좋아한다. 이 경우 학생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업학교에 무료로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해진 틀과 교사가 있다. 이 아이에게는 고역이다. 그래서 아이를 마을에 있는 목공소에 보내기로 했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마을에 조그마한 초등대안학교가 있는데 그 안의 프로젝트 중 목공수업이 있다. 마을 목공소를 운영하는 분이 그곳에 선생님으로 나가시는데 이 고3학생이 보조교사로 가기로 결정됐다.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학교에 16살짜리가 보조교사로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20~30대 강사보다 14살 16살 형 오빠이다. 그래서 보조교사로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는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 기존에 갖고 있는 학교에 대한 관념을 버리면 아름다운 학교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해보는 것이다.


<사진='무늬만 학교' 학생들의 활동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무늬만 학교’도 그런 의미로 만들었다. 작년에 1년 과정을 처음 시작한 것이지만 그 전부터 아카데미 등을 많이 해왔다. 한 2~3년 후에는 어떤 방식이든 품만의 학교를 만들 것이다. 동네에서 활동하다가 다른 지역도 가보고, 네팔에 가서 또 한 3개월 있어보고 이런 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시스템으로 다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공교육도 필요하다. 공교육이 맞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같은 방식이 불편한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다가 힘들고 흔들릴 때가 있다. 현재 방식에서는 그렇게 힘들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10대 학생들에게는 없다.
중학교도 휴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잠시 학교를 가지 못해도 퇴학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학생이 심적으로 흔들릴 때는 휴학하고 ‘무늬만 학교’ 같은 데도 와보고, 다른 활동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기유발을 얻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왜 자꾸 프랑스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가? 그곳에는 정규 대학도 있지만 아카데미가 굉장히 많다. 선택권이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풍요로운 것 같다.
Q. ‘무늬만 학교’를 찾는 학생들은 어떤 친구들이 많은가?
A. 학교 다니는 아이들,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 등 다양하게 있다. 중학교부터 고3까지 학년 제한이 없는 통합교육이다. 자발적으로 오는 아이들도 있고, 엄마가 데리고 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일단 부모님 중 한 분이 꼭 오셔서 심층면접을 해야 한다. 부모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은 처음에 좀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학교를 무시하고, 학교도 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작년 가을에는 성북교육청 국장님이 품 사무실에 찾아왔다. 품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교육청에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하더라. ‘살다가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지금 성북교육청과 같이 학생임원단 워크숍을 해주고 있다. 공교육 계에도 점차 우리와 이야기가 통하는 교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에서는 처음에 아이들과 관계 맺을 때 놀이로 시작하나?
A. “처음에는 놀면서 시작해서 그 다음에 공부로 접근하나?” 하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질문이다. 이미 질문 속에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와 공부를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노는 것이 사고를 더 필요로 한다. 학습이라고 하면 자꾸 앉아서 뭘 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보통 커리큘럼을 보면 아이스브레이킹 하고 워밍업 하며 시작하고 이런 방식인데, 한 20년 해보니까 그것도 다 인위적인 것 같다.
경험을 쌓다 보니까 다양한 것을 섞어가면서 그때그때 극본 없이 갈 수 있겠더라. 수업이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놀 때 수업 같기도 하다. 내가 일과 여가의 구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공간 안에 악기도 있고 아이들과 밴드도 한다. 품은 이 안에서 그런 것이 다 이뤄진다. 단지 돈이 없을 뿐이다.(웃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즐거워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고. 1년에도 몇 번씩 네팔에 가는데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한다. 가서 친구도 만나고 산에도 가고 마을에 가서 일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20년 동안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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