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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박정희 최종판

글쓴이 : 김땡땡 날짜 : 2014-06-29 (일) 14:47 조회 : 957


박정희 최종판! 박정희 마지막 날이다. 이날을 위해 난 장서영과 무수히 많은 의심과 질문, 점검과 확인, 조사와 이해, 수정과 보완을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나는 질기고 질긴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장서영을 몰아세웠다. 그 결과 목표치를 다 끝내고도 끝마치지를 못하고 마지막 까지 물고 늘어졌다. 아마도 그건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무엇을 모르는지 배우는 공부. 박정희는 종이에 연필로 점을 찍는 그런 공부였던 것 같다.

 

마지막 까지 무엇이 더 부족한지를 고민하며 당당학습모임을 시작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기에 못한 것은 못한 것이기에 노력한 만큼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마을을 편히 놓았다. 장서영을 더 다그치기 미안하기도 했다.

 

발표의 첫시작은 김나현이했다. 결과적으로 김나현은 공부를 거의 못했다. 김나현은 그러했던 자기의 상황과 상태, 이유들에 대해 설명했다. 바쁘기도 하고 휘몰아치기도 했던 김나현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감정들을 소모시키고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당당 공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공부를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은 김나현 스스로가 가장 많이 느끼고 깨달았을 것 같아보였다. 나현이가 어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기를~~

 

정규민의 발표는 노동과 인권이 주제였는데 정규민은 파편적이고 분절된 공부를 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이 공부를 통해 시야의 넓이나 생각의 깊이가 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정규민이 그러한 공부? 생각?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집중력있는 줌 인과 줌 아웃에 치열해야 할 것 같다.

 

다음은 강종민이었다. 종민이는 역사에 대한 공부를 처음해보았을 것이다. 몇 번 빠졌기 때문에 혼자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인 종민이는 작년 처음으로 이러한 공부를 시작했던 무늬만 과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농사를 지으러 가야하는 종민이기에 이번에 많이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웠다. 종민이가 보다 더 공부하는 법, 생각하는 법을 치열하게 배워가면 좋겠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동안 몸으로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맘과 머리가 농사속에서 성장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농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기전에 배운 것이 농사라는 것과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게 종민이가 보다 더 공부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드디어 나와 장서영의 차례가 왔다. 피티를 만들지 못해 한글 파일의 자료를 가지고 발표를 했다. 주제는 크게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이다.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경제성장이다. 우리는 그 경제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경제성장의 요소들과 과정들을 분석하고 연결시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아있는지 확인해보고 판단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사실은 직감적으로 골랐던 핵심 정책들 그러나 그것은 크게 경제성장이란 보기 좋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어떻게 경제가 성장했고 그 성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했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핵심 정책은 수출공업화다. 당시 경제력도 자본도 소비력도 없는 후진국 대한민국은 외부로부터 자본을 끌어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상품을 해외로 팔아 돈을 버는 수출에 집중을 했다. 시작은 경공업이었다. 경공업은 초기 자본이 크게 필요치 않다. 많은 노동력만 있다면 경공업은 가능했다. 값싼 노동력은 이미 널리고 널렸다. 전쟁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고 한국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가발과 신발을 만들어 팔았다.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밥값을 해결해야 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하려면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정부는 그래서 쌀값을 내렸다. 노동자가 적은 돈을 받고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쌀값을 내린 것이다. 쌀값이 내려가니 농촌은 망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계속 해서 공장이 생겨나고 발전을 거듭하지만 농촌은 상대적으로 농사지은 쌀이 제값에 팔리지 않으니 망하고 있었다. 농촌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이농을 했다.

여당 즉 박정희 정부의 표밭이었던 농촌이 망하면서 농촌의 표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촌의 표심이 흔들리자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고 정부는 이중곡가제와 새마을운동을 일으켰다. 새마을운동은 도시에 비해 소외받는 농촌을 현대화 시키는 빛좋은 개살구다. 정부가 농촌에 시멘트와 철근을 주고 근면, 협동, 자조의 정신으로 자체적으로 발전하라고 하고는 서로를 경쟁시켜 개발에 참여하게 만든다. 경쟁에서 우수한 사람에게만 보상으로 시멘트와 철근을 더 준다. 경쟁심리로 농촌은 빚쟁이가 되면서도 농촌개발에 뛰어든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이중곡가제가 실시되었다. 정부가 기존 시세보다 비싸게 곡물을 구입해주는 이중곡가제는 계속되는 적자로 소용없게 된다. 결국 농촌은 또 다시 빚과 적자로 망하게 되고 끊임없이 농민들은 도시로 이농하게 된다. 이농 현상으로 도시에 노동력은 넘쳐나고 끊임없이 저임금 저곡가는 유지된다.

정부는 경공업으로 돈을 벌자 보다 돈이 되는 중공업으로 바꾸게 된다. 중공업은 시멘트, 제철, 자동차, 조선업 등으로 경공업 보다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정부는 중공업 수출에 박찰을 가하기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뚫으면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항구로 빠르고 값싸게 옮길 수 있게 되고 상품들은 배에 실려 팔려나간다.

경부고속도로는 수출공업화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주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뚫는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노동력 착취를 당해야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경부고속도로의 모티브는 히틀러가 만든 아우토반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뚫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정부는 자금 마련을 위해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 부동산 정책엔 환지방식과 채비지를 이용했는데 결론은 정부가 땅을 빌려 개발을 시켜주고 일부 땅을 정부가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진 땅을 도로 비싼 값에 팔아 이득으로 경부고속도로의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정부는 무분별한 개발을 했고 결국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켜 지가 폭등을 야기했다.

수출공업화정책은 국민들의 값싼 노동력과 농민들의 값싼 쌀로 수출품을 만들어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기업이 세계시장에 팔았다. 덕분에 무수히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개발과 착취 그리고 동원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경이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성장은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성장을 위해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촌이 망해 우리는 수입쌀에 의존해야 하고 식량문제와 물가 폭등에 언제나 긴장해야 한다. 공동체 의식과 한국의 문화는 시멘트 속에 파묻쳐 버렸고 경쟁의 성과만이 우리 사회를 움직인다. 행복의 가치는 주객이 전도되어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고 고도성장과 같은 성공스토리만이 실패하지 않은 유일한 삶의 정답이 되어버렸다. 거대기업의 출현으로 자본은 재벌에게만 몰리고 노동자의 인권은 당연하게 무시된다. 인간의 기본적 가치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치와 경제는 서로 붙어먹으며 끝없는 착취의 고리를 유지시킨다.

독재를 옹호한 경제성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었다. 필요한 성장이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 목적을 잃은 성장이었다. 국민의 행복이 최우선이어야하는 국가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지나친 성장과 개발만 이루었지 분배의 문제 앞에서는 시치미를 땠다. 그리고 그 모든 현상과 문제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여전히 살아있다. 박정희는 우리 사회의 얼굴로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의 박정희 공부는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덕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을 조금은 정확하게 볼 수 있게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씁쓸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들이 당연하지 못한 세상에서 나는 살아왔고 살고 있다.

나는 열아홉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21살 다시 돌아본 세상은 내가 알고 느끼던 것보다 더욱 실망스럽고 캄캄하다. 더욱 오랜 역사와 정교한 바탕으로 만들어져있었다. 앞으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욱더 마주치게 될 것 같다. 나는 이 공부와 동시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나현 2014-06-29 (일) 19:26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정리이지만 그래도 그 때의 공부들이 많이 생각나는 기록이다.^^ 아쉬움은 많았지만 그래도 치열한 공부 함께하니 좋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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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땡땡 2014-07-01 (화) 01:16
김나현~ 억수로 열심히 썼고만 고게 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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