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됩니다]
품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품이 무슨 뜻이에요?’ ‘품이 뭐하는 곳이에요?’
품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따뜻한 품이 되고, 가치있는 사람을 만나면 가치있는 품이 되고,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품이 되고, 청년을 만나면 청년의 품이 되고,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자를 만나면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품이 되고, 꿈을 꾸는 자를 만나면 꿈꾸는 품이 됩니다.
하지만 품은 위선적이고 거짓된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품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청년들이 이 땅에 품어야 할 소박한 꿈들을 품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해체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청년들이 자기 언어와 문화를 품으며 세상에 말걸고, 소중한 소통을 이뤄내기를 희망합니다.
품은 우리의 아이들과 청년들이 스스로를 흔들며 생긴 울림의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시도하기를 희망합니다.
품은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도달하려 하지 않습니다. 품은 삶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찾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됩니다.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3학번 동기 심한기, 이준호, 양금석은 유네스코 청년문화원에서 눈이 맞았다. 노래와 청소년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가진 세 남자는 대학 졸업한 후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기타를 들고 전국의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1992년에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를 개소했다.
청소년복지의 또 다른 방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변의 우려는 그칠 줄 몰랐다.
청소년과 관련이 있다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청소년캠프 위탁사업, 어울마당, 노래품 공연, 장애청소년연극축제, 대학생 및 지도자교육.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처절하게 고민하여 품을 만들어 갔다
조직의 변화 - 재단 법인의 설립 (1994~2000)
1994년 말, 품은 재정적 한계에 부딪혀 사면초가에 놓이게 된다. 사무실, 실습교육실, 노래품 합주실, 식당 등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던 20평 남짓의 지하실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품의 생각과 의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후원자였다. 이때 뜻있는 재단을 만들기 위해 인적자원을 찾던 사람을 만났고, 품의 모든 직원이 재단으로 편입됨으로써 급한 불은 우선 끄게 되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 채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일암청소년육성재단/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품은 청소년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청소년관련 각종 정부지원사업이 확장되었다.
정체성과 운영에 대한 혼란 속에서 두 집 살림을 하던 중에도 품은 자체사업과 정부시원사업을 확대해가며 나름대로의 발전과 정체성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96년 품 역사에 길이남을 청소년 뿌리찾기 프로젝트 ‘삶의 뿌리를 찾아서’가 시작된다. ‘강을 찾아서(96)’, ‘나 백두대간 간다(97)’, ‘생명의 바다, 삶의 바다(98)’라는 제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대규모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전국 청소년활동가 연수 및 활동가를 위한 대중문화 워크숍 외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그 해 서울시에 ‘청소년연극제’를 제안하며 ‘청소년문화활동지원사업’이 본격화 되었다.
97년 강북 시민단체들과 연대를 시작, 98년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의 제안으로 지역단체들의 실질적인 첫 연대사업인 ‘강북청소년문화축제’가 탄생했다.
이 사업을 기점으로 지역사회 안에서의 청소년문화복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청소년문화를 매개로 지역연대활동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적인 독립은 보장되었지만 불규칙한 운영과 정리되지 않는 행정체계는 결론적으로 품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한 단체가 체계적인 조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업의 질적 발전과 함께 운영과 조직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재단의 설립목적 자체부터 품의 방향과 차이가 있었고, 사업에만 치중한 품의 안일함도 불균형의 원인이었다.
품은 조금씩 독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고, 2000년 9월 9일 독립이 결정되었다.
2001년 비영리민간단체(서울시등록 제252호) ‘품청소년문화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등록하고, 품은 다시 태어났다. 또한 독립과정에서 ‘품의 뜻과 가치에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전환되며, 단순 후원개념을 넘어서는 ‘품의 주주’가 탄생했다. 현재까지도 품의 가장 든든한 비빌언덕으로, 뿌리이자 동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청소년문화활동과 청소년문화축제를 중심으로 한 제한적인 지역 네트워크의 개념은 지역과 환경과 문화의 변화, 세대간의 소통을 중심으로 대안적인 지역공동체의 개념으로 성장했다.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시 청소년연극축제는 경연에서 비경쟁 축제로, 과정있는 축제로의 변화‧발전하며 청소년연극축제 운영매뉴얼을 발간, 보급하기도 했다.
또 청소년문화활동의 환경을 흔들기 위한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가 시작되었다. 품의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의 변화를 확장하기 위한 교육운동이었다. 품은 책임있는 사회적 활동으로써 교육사업의 필요성을 확인하며 품 활동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사업에서 운동으로’라는 시각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업의 성과보다는 결국 품이 어떤 사회적 책임을 해 나갈 것인가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변화와 공존을 위한 지역연대활동, 개인을 흔들고 집단을 흔들며 청소년 삶의 환경을 흔들 수 있는 교육활동, 동네(마을)에서 청소년들이 즐겁게 타인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청소년문화활동지원 등이 변화를 시도했다.
2008년 네팔품을 시작하면서 품은 한국과 네팔을 연결하며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시작한다. 네팔과의 만남은 품에게 더 넓은 시각과 지구적 사유와 실천의 동기를 주었다.
한,네팔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한.네팔 청소년과 청년들의 교류사업 등 인연을 끈을 삶과 실천으로 연결하는 신나는 과정들을 만들어갔다. 또한 네팔에 파견된 품의 활동가는 카트만두 시내가 아닌 누아콧 베시마을에 들어가 마을의 주민과 함께 살아가며 사업을 넘어서 삶의 호흡으로 가능할 수 있는 실천들을 시작했고 베시마을에서의 7년의 시간을 담은 ‘대안적 국제NGO활동 사례, 허실로 베시가웅’을 출판하기도 했다.
네팔에서 프로젝트와 사업을 넘어서려는 시도와 연결했듯이 한국에서도 지속가능한 청소년과의 만남과 성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0년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자기주도권을 가지며 활동할 수 있는 전용공간이 필요했기에 아이들과 함께 모금운동과 모금 콘서트 등을 통해서 청소년문화 ‘공간’을 만들었고 2011년에는 마을 안에서 가능한 일상적인 배움과 성장을 위한 ‘무늬만학교’ 주말과정을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다양한 방식의 접근과 활동들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품은 “마을, 청소년과 청년, 주체적 배움과 성장‘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6월 품이 20살이 청년이 되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며 아직도 해야 할 일,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다. 달려온 시간들을 잠시 멈추고 품 20살의 역사를 들춰보기로 했다. 기억과 회고의 역사만이 아닌 이후 품이 걸어가야 할 진득한 지향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품이 시도했던 20년의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세상과 공유하는 ‘품 20년 릴레이 워크숍’ (20주년 포럼, 십대와 마을만들기 사례 워크숍, 대안적 국제 ngo 활동, 무늬만학교 사례 워크숍)과 5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으며 감동적인 품 20살 기념식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 20년을 돌아보고 확인하며 다음 시간을 꿈꾸기 위한 품의 20년의 기록과 희망을 담은 책 ‘문을 열고 길을 가며 삶을 꿈꾼다’를 발간하고 공유했다.
이렇게 품의 시계는 20살 청년을 삶을 향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품이 만들어온 20년은 ‘사람이 학교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자발적 소명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가지들을 하나씩 잘라내고 연결하며 마을에서 가능한 주체적이고 상호적인 배움과 성장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시대의 변화나 흐름에 부합하기 위한 욕망이 아닌 품이 경험하고 실패하고 시도했던 20년 과정의 결실이기도 하다. 2012년을 기점으로 2020년 현재까지 품의 지향하고 있는 키워드는 ‘지구인, 마을, 배움, 상호성장, 주체적 삶, 순환적 에너지’로 정리되어 왔다.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삶을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기획단’ 역시 지구적인 사유와 인식으로 마을 속에의 배움과 성장을 연결시키려 했다. 2014년에는 마을 속 대안학교 ‘무늬만학교’ 1년 과정(중등통합)을 실험했고 지속가능한 관계와 시도와 실천을 이어가려는 노력에 집중했다.
이러한 연결들은 네팔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일방적 지원이나 동기부여가 아닌 자신의 지역에서 통합적 상호배움과 성장을 통해서 스스로 가능한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Sustainable Learning Community Project’를 이어갔다. 이 시점부터는 과정과 진행의 주도성을 네팔의 청년들이 가질 수 있게 했고 스스로 가능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이렇게 네팔과 한국의 품은 서로의 고민과 힘을 더욱 깊게 연결해갔다.
이런 과정에서 십대시절 품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하나둘씩 청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청년에 대한 고민과 연결을 시도하게 되었다. 무늬만학교의 과정에서도 품 출신의 청년들이 당당한 교사가 되어 함께 했고 품 사무국의 청년활동가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만들어졌다. (현재 품이 위탁받은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활동가 중 품 출신의 청년이 4명이나 된다.)
2015년 품은 ‘사람과 마을이 학교’라는 가능성을 찾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하게 된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와 함께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를 구상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게 되었고 열린사회북부시민회,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삼각산재미난마을과 함께 ‘마을이학교’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는 품이 중심이 되어 진행했던 거의 모든 활동을 넘어서 공동의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마을이학교’를 실천하며 품은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조금 더 지속적이고, 일상적이며, 경험과 실천이 내면화되며 자신의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간과 환경의 절심함을 확인하게 된다. 그 동안 청소년 문화의 집, 청소년수련관 등 적지 않게 위탁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정된 시스템과 획일적 공공성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과 활동에 품의 의지와 욕망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늘 지속가능한 안정성에 대한 어려움과 아쉬움은 있었는데 ‘마을이학교’를 진행하며 공공성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공예산, 공공시설 등 공공성이란 이름 아래 갇혀진 한계와 획일성 또는 허투루 낭비되는 돈과 활동 등에 대한 유쾌한 반격을 상상하게 된다.
공공이란 이름 아래에서도 자율과 낭만을 잃지 않고, 어려운 조건과 환경으로 지치지 않고, 한 조직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와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품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고 결국 서울시 제1호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이하 마을 배움터)를 위탁받게 되었다. 20년을 훌쩍 넘은 역사와 시간과 노력의 결실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마을배움터로 집중되고 있다. 품이 공공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응원과 격려가 더 많았다. 이는 공공시설, 공공영역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응원이며 격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위탁'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마을배움터에서 가능한 새로운 상상과 실험에 집중하였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 사업과 운영에 대한 새로운 상상, 사람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시도들이 시작된 것이다.
품이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이 2023년 1월 8일부로 문을 닫게 되었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마을공동체 관련한 사업이나 위탁시설 운영을 종료하거나 폐지하기 시작했고 2023년은 관련한 많은 사업과 위탁 시설들이 문을 닫고 있다. 2022년 가을부터 품과 숨의 청소년, 청년, 활동가들이 서울시의 부당한 예산 삭감에 대응하며 1,000명의 공동 연명과 성명서 발표, 청소년 기자회견을 하며 싸웠지만 결국 서울시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행정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5년간 숨이 만들어 낸 파장은 분명 있었다. '십만원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안정적인 실패할 권리를 존중받아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발견하고 실험하는 프로젝트였다. 개인 혹은 그룹의 발칙한 상상, 자신의 기준에서 쓸데 있는(필요한) 헛짓, 공익적인 의미를 담은 실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발견해 보는 탐구 등을 마음껏 실험(실천)해 보는 활동이 펼쳐졌다. 이것은 전국의 다양한 청소년현장에 모델 사례로 전파되어 각 지역에서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활동가 배움네트워크설계
및 프로그램 운영를 운영했다. 학교 선생님을 포함한 청소년지도사 등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가들이 건강하게 사유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진행(배움 담론 형성)했고, 활동가들을 위한 연구학교 및 열린대학 등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진행했다. 세 번째는 공공 공간의 혁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마을배움터를 이용하는 당사자인 청소년·청년·청소년을 만나는 활동가와 함께 배움터 공간 함께 설계했고, 이 민-관 협치 사례는 생활 SOC 전국 사례로 선정(국무총리실) 되었다.
‘숨’은 지난 5년 간 품 30년의 뜻과 가치를 이어 다양한 시도와 사례를 만들었고 청소년, 청년, 활동가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숨’을 지키지 못했다. 서울시는 숨의 폐지를 결정했으며 공공의 시설이나 사업이 의미보다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거침없이 쓰러질 수도 있음을 체감했다.
숨은 단순한 위탁시설의 의미를 넘어 품 30년의 땀과 의미를 제대도 실천할 수 있는 품의 실천 현장이며 공간이었다.
어떤 사람은 '숨은 품이 아니지 않나?'라고 묻지만, 숨은 품이었다.
이제 숨은 문을 닫지만 품의 새로운 시간을 다시 만들어 갈 때이다.
지금 그리고 그 이후 품은?
현재 품은 10평 남짓한 작고 소박한 그러나 따뜻한 품만의 공간에서 다시 일상과 활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품이 3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실천 가치를 이어가며 사회 안에서 품의 역할을 해 나가고자 합니다. 스스로 그러한(self-so) 주체적인 청소년(청년) 문화 만들기와 사회적 반향은 늘 여전히 필요한 것이고 품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품의 걸음을 항상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