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을말하다. 열둘]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와 인연 _ 우수명(대림대학교 교수)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와 인연

 


품과 인연은 길면 길고 깊으면 깊다. 1994년 어느 때 대학생이던 나의 눈에 들어왔던 품의 집단 활동 워크샵. 아무 생각 없이 참석했다가 ‘지역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심한기 대표의 강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배웠던 치료적이고 문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집단 활동에서 지역과 문화를 고민하는 집단 활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고, 내 복지실천의 대안으로서 ‘지역’을 고민하던 나에게 그 ‘현장’을 보았던 경험이었다. 그 뒤 나의 후배들에게 품에서의 자원봉사를 권유했고 그것이 한신대와 품 사이의 인연을 만드는 시작이 되었다(이 인연은 가끔 단절되지만 그래도 진행형이다). 그 중 몇몇은 배우자를 품에서 만나기도 했고 두레품의 활동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나와 혈연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수년 후 사회복지 고수 열전(?)으로 치러진 한덕연 원장님의 사회복지정보화캠프는 나에서 사회복지 현장의 많은 고수들을 만나게 해준 자리였고, 나도 그 중에 한명이었다는 영광스런 자리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정보화캠프에서 다시 만난 심한기 대표는 엊그제 만났던 형처럼 편안했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노란 콜라와 거품없는 사이다의 알코올 속에 복지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로부터 더욱 가까워진 인연은 문화복지 아카데미에 참여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고, 품의 주주가 되어 품과의 연이 계속되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품의 주주는 참으로 특이한 형태다. 주주라는 표현 자체가 주식을 가진 기업의 주인인데, 대부분 이윤 추구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품의 이윤은 현물이 아닌 ‘가치’이며, 소비재를 파는 것이 아닌 ‘지역과 문화의 회복’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품은 주주를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품의 주인이자 가족이 되는 것이며, 품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투자자이자 동반자로 초대하는 것이다. 품의 이러한 주주의 관점 역시 ‘돈보다 사람’ 중심이 되는 토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지켜가야 할 아름다움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복지에 대한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 주주로 참여하게 되면서 품과 더 소통할 명분(?)들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는 품과 문화와 복지를 더욱 더 자유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가져왔던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문화적 요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역량이 이 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이것의 시작은 ‘사회복지 욕구 다시보기’라는 나의 책으로 나왔다). 나 뿐만 아니라 품과 인연이 된 많은 이들이 바로 잃어버린 우리들의 것들, 사람다움을 갖춘 지역과 문화를 다시 회복하는 품의 ‘가치적 역할’에 자극받아 왔으며 그로 인해 품과의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품의 주주들은 품의 가치를 아는 품격 있는 존재들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청소년이든 지역이든 문화든 복지든 간에 현실에서 부딪치는 실천의 한계라는 장벽 앞에 절망과 갈망을 경험하게 되고 소진되어 가는 나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에너자이저처럼 충전되고 새로운 도전으로 수천년 간 지속되어 왔던 잃어버린 미래를 찾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 품의 가치가 쌓여 만들어진 ‘품의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서이다. 그것이 문화복지아카데미와 지역축제들을 씨앗으로 ‘십대와 마을만들기’, ‘무늬만학교’, ‘오~ 히말라야와 네팔품’ 등의 다양한 문화복지의 꽃들로 피어나고 있다(물론 꽃은 진다. 그래서 다시 피워야 한다). 특히, 네팔은 다녀온 이들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주었다. 히말라야라는 상징성과 영성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여행을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소진된 영혼과 육체를 회복시키는 힘은 막강하다.

 


품과의 인연은 이러한 꽃들로 인해 더욱 향기롭고 다양한 색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향기는 품에서 식사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가족처럼, 집에서처럼 평온하고 행복하다. 이러한 향기는 품의 선생님과 포옹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우정보다 화려한 수식어의 인사말보다 아름다운 소통이 되었다. 이러한 향기는 품의 사무실을 생각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나의 편안하고 쉼을 줄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다. 이러한 향기는 품과 기울이는 술 한 잔에서 더욱 느낄 수 있다. 나의 인생의 에너자이저가 되었다.

 


기나긴 20년간의 품의 살아옴은 가치를 만들고 문화 복지를 실천하는 과정이 한 장 한 장 벽돌처럼 쌓여 하나의 다듬이 길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있고, 많은 품의 주주들이 있고, 많은 청소년들과 세계인이 있다. 물론 이 길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들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의 더 먼 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품은 20년간 걸어온 역사적 발자욱들을 통하여,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품의 그 역사적 존재함으로 인하여 더욱 치열해지는 문화복지판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며(田), 나와 이웃들의 이야기와 삶을 나누고 소통하는 곳이 되고(口), 동네가 되고 공동체가 되어(一) 문화 복지의 정신(神)을 싸우고 이어가고 지키게 될(止) 지향점(福祉)이자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그 존재로 인하여 나와 또 다른 나와 네팔을 넘어, 전 세계 무수히 많은 나와의 인연이 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품의 20년이 앞으로 200년 아니 2000년 간 사람다움이 살아 숨 쉬는 문화 복지의 역사이자 실존이자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으로 번영할 것이다. 앞으로도 품은 여전히 시간의 역사성 속에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인연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의 가치를 빛내주기를 기도한다.

 

파주에서 바람하나의 꿈 우수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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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명(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30번이 넘는 교수임용면접을 봤다고 한다. 우수명 선생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과 분명함들이 아직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기 힘든 사회임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스코트인 거북이처럼 늘 서두르지 않고 깊은 과정들을 만들어가며 수용적이다. 대학시절 품을 만난 시점부터 품의 진정한 동지이며 가족이다. 그리고 품 식구들에게는 좋은 선배로서 때론 스승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두 아들이 품 캠프에 단골손님이니 함께한 세월이 아름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