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심한기 대표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심한기 대표

2010년 11월 2일 • 통신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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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새갈래에서 만난 심한기 대표에게선 사람냄새가 났다.
잔뜩 힘들어간 어깨나 또박또박 날선 목소리, 칼주름 양복속에 감춰놓은 거드름 같은걸로
함께있는 이들 주눅들게 만드는, 소위 잘나가는 '대표'님들이 풍기곤하는 권위자 냄새말고,
다정한 눈빛과 소박한 웃음과 정겨운 말투로 함께있는 이들 마음을 따뜻해지게 만드는 사람냄새,
사람냄새가 나서 좋았다. 그래서 심한기 대표의 '품' 에는 그렇게나 오랫동안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더 나아가 여전히 꿈꾸는 어른들이 함께하나보다 싶었다. 실수나 잘못을 해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손잡아 줄것 같은 따스함을 가진 그의 '품'엔 말이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스스로를 흔들며 생긴 울림의 힘으로 세상이 변할수 있길 바라도록 돕는 곳, 특별한 목표에 닿으려하기보다 삶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한 마땅히 해야 할일을 찾아 해내는 곳이 되길 바라며 심한기 대표가 대학졸업직후 노래와 청소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만들었다는 '품'은 올해로 열여덟살이나 되는 청소년문화공동체. 청소년 복지의 다른방향을 제시하고자 캠프, 공연, 축제, 지도자 양성등의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지역문화공동체를 위해 움직였고, 2006년부터는 문화예술교육 워크샵을 시작으로 네팔과 인연을 맺었으며, 한국에 오기전엔 네팔의 베시마을과 골리마을에서 그곳 청년들과 함께 Happy Village Project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청년과 지역사회'가 빼앗겨버린 봄꽃을 피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국과 네팔을 넘나들며 '청년흔들기, 청년 인문학교, 청년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으며, 70살이 넘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히말라야 언덕에 소박한 '품속학교' 를 짓고 웃기는 '교장 질'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심한기 대표.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저녁, 대인예술시장내'상상의 곳간' 에서 문화행동S#ARP 정민기 대표의 진행하에 느슨하지만 짱짱했던 새갈래를 함께하며 그가 들려준 '심한기의 인생이야기- 품 이야기, 그리고 네팔이야기' 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새갈래. 사람대 사람으로 함께하는 만남

"반갑습니다. 사람이 적네요. 우리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행사나 프로그램을 엄청해왔잖아요, 지금도 하고 있고, 이것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일 수 있는데, 그동안 해온걸로 봐서 저도 그렇고 준비하신 선생님도 그렇고 사실 오늘 이 자리가 되게 불편한 자리일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행사를 한다고 하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게, 몇명 왔느냐 반응이 어떠냐 하는 것들이었고, 내용보다는 그런것들로 행사를 판단했기 때문이예요. 저는 거기에 구애받지는 않지만, 50명을 위해 강의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5명밖에 없으면 솔직히 허전한게 있긴 하나, 예전엔 그런게 되게 민망했지만 살아오면서 많이 없어졌고요, 여기 새갈래에 오면서는, '아 이게 대세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예전의 판단기준으로 보면 전 오늘 굉장히 창피한 강사거든요? 내가 이정도밖에 안되나? (다들 왕창 웃는다.) 열댓명 앉아있고,(또 다들 왕창 웃는다.) 음식은 30인분인데~근데, 예전이었으면 기분상하고 그럴텐데, 저는 지금 기분이 좋아요. 

일단 제가 기분좋은것은 이 현수막이요. 제가 강의를 십년 넘게 다녔지만, 이런 현수막은 처음봤어요.
대학이나 단체들 강의나가면 현수막에 뻘건글씨로 적색선전 같이 해서 행사에 대해 써놓는데, 여긴 다르네요. 그리고 강사섭외과정에서부터 사실 전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보통 강사섭외하면 메일 세줄이상 안넘어 가거든요, '주민등록 사본과 통장사본과 이력서를 제출하세요, 강의내용은 이러저렇게, 시간은 몇시입니다.' 하고 일정표를 첨부파일해서 보내는게 끝이예요. 그러면 제가 답을 어떻게 할까요? 사실 전 그쪽에서 메일을 보내면 늘 답을 길게 했었어요. 만나서 반갑고 저는 이런사람이고 제 요즘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을 써서 답장을 보냈어요. 그러면 그쪽에서 또 답이 와요. 근데 또 그것도 한줄이야. 바쁘신데 승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끝인거예요. 그러다보니 지쳐서, 저도 '네' 라고만 대답하고 첨부파일하나 넣어서 답장을 보내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죠. 그런데, 임아영선생님(새갈래 담당자)이 저한테 보낸 메일을 읽었을때는 처음부터 강사섭외하는 얘기는 없고 자기가 바빴던 얘기만 막 써있는거예요. 뭐 오늘 무슨일 때문에 바빴고 어떤사람을 만났는데 뭘 해서, 지금 얼굴만 씻고 메일을 보낸다고 쓴걸 보면서 처음엔 이사람이 약간 미쳤나? (허허허허 다들 또 왕창 웃는다) 했어요. 근데 쭉 읽어보니까, 아 이분이 지금 '사람 이야기'를 나한테 하고 있는거구나~ 했어요. 임아영선생님이 제게 메일을 보냈을때, 사람냄새가 나는거예요. 저를 강사로 취급하지 않고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랜만에 강사섭외의 과정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은거죠. 그래서 저도 마음이 편해져서, 와 메일쓰고 싶다, 더 쓰고 싶다, 더 길게 쓰고싶다 하는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고, 그런 두세번의 과정을 거치고서 여기 온거예요 기분좋게. 전 메일로만 임아영선생님을 알았고 사실 오늘 처음 본거거든요, 근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 임아영선생님을 보기 전부터 선생님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여기에 왔는데, 아는 사람들이 있고, 청중은 얼마 없지만 저를 강사대접이 아니라 따뜻하게 '사람대접'해주고 있기에 저는 지금 너무 좋은거예요. 저는 우리가 이런것들을 더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교육프로그램했는데 오십명 모집에 팔십명오면 엄청난 자랑이고, 사람들도 '너네 기관 훌륭해~'이러거든요? 하지만 전 오늘이 자랑스러워요. 오십명모집했는데 스탭빼고 아는얼굴 빼고 서너명이 와서 아름답게 막걸리 먹었다는거요. 사실, 교육프로그램이나 강의나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게 있어서 강사가 뭔가를 반드시 줘야한다고만 생각하고, 마음에 안들면 화내고, 지루하다 싶으면 나가면서 자료집이나 받고 가요. 그러한 수많은 삭막한 강좌가 있어요. 그러나 여기 앉아계신 분들은 그렇지 않으세요. 전 우리모두가 이런 따뜻하고 인간적인 자리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어요. 온 사람이든 부른사람이든 이런 자리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늘면, 예정보다 늦게 시작했거나 음식이 남거나 혹은 부족하거나 하는 그런 모든것들을 서로간에 따뜻하게 보듬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늘고 함께하는 이들간에 그런 마음들이 유지된다면,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들이 다 사라져도, 예를 들어 창조도시 광주, 대인시장프로젝트, 디자인 서울 그런것들이 다 사라져도 우리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지않을까 해요. 

전 광주를 좋아해요. 저쪽에 앉아있는 강동호씨는 대학교때 품에 들어왔는데, 처음에 우리한테 연락도 하지 않고 혼자서 짐싸고 와서는 '나 여기서 일하겠다'고 한 친구예요. 황당했죠.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죠. 그런데 그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진거예요. 오래된 친구들, 그들이 지금까지 남아 품과 함께 하고 있는건, 프로그램이 연결되어 있거나 돈이 연결되어 있거나 하는, 이익으로서 연결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예요. 제가 광주를 좋아하는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문화예술도시라서 좋아하는게 아니예요. 광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 사람이예요."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 이야기.

◆ 품의 시작

"저는 학창시절에 음악을 했었어요. 근데 십대때 한번도 세상으로부터 지지를 받은적이 없어요. 엄마 아빠 친척 기성세대들에게. 친구들에게 조차도. 친구들은 우리팀이 공연을 하면 박수를 쳐요, 근데 돌아서면 욕했었죠 쟤네들은 대학도 못가 이러면서. 그렇게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한채 음악을 하고 대학을 갔었는데, 대학에서 강의를 듣다 보니 청소년을 도와주는 직업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죠. 그때 마음먹은거죠. 나는 죽을때까지, 나와 비슷한 십대를 겪고있는 청소년들을 지지해줄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고. 그리고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세명과 함께 품을 만들어서 지금은 열여덟해가 되었고, 네팔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한지는 이제 4년이 되었어요."

◆ 비영리 민간단체, 품

비영리민간단체인 품. 남들은 다 사단법인으로 나가는데 왜 비영리민간단체로 고집하며 독립적으로 엷여덟해동안 일하고 있는가? 품의 시작은 3명의 친구들과 함께였다는데, 그 3명은 지금 무얼하고 있나?

"어떤일을 하는데 있어서 조직의 형식과 내용과 방식이 다양한데, 저는 그 다양한 방식속에서 각자가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비영리민간단체로 존재하는것에 대해서도. 이런건 어느영역이나 다 똑같은거 같아요.
공공영역에서, 국가정부의 보조를 받는기관- 사회복지시설, 청소년시설, 수련관 등에 계신 분들이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불평하는것이 '힘들다, 획일적이다, 불편하다, 행정이 많다, 경직되어있다, 맘대로 못한다, 자유롭지 못하다, 답답하다' 이고 이런 이야기를 지금도 계속 하고 있고요,
민간영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사람들도, 비자본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은 자본때문에 힘들다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하소연을 해요. '야 우리가 이런 시민활동을 하고 싶은데, 이것을 유지하려면, 돈때문에 공모사업을 할수 밖에 없어, 답답해' 하고 하소연하는것이 계속 반복되어 왔어요. 

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광주 YMCA나, 흥사단, 청소년 문화의집, 일반 문화의집같이 기관에 계시던 예술활동을 하고 계시던 레지던시를 하고계시던 여기 '상상의 곳간' 같은 공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시던 간에, 지금 자기가 일하고 선택한곳의 환경과 조건에 대해 조금 더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불평거리들과 어려움들을 무시하자는게 아니라, 그런 어려움을 넘어설수 있는 힘은 하소연이 아니라 당당함, 가능에 대한 희망같은걸로 존재하기때문이예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 수있냐면, 품을 만들때 저희가 그랬거든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거대기관- 국제교류관련 일을 하는곳- 에 들어갔었는데, 그곳에서의 일은 제가 상상하던것이 아니었어요 첫날부터. 청소년을 만나는 단체인데 양복을 입고 오라는 거예요 첫날. 저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아니 애들을 만나는데 왜 양복을 입어야하는지. 갔더니 또 거기 총장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이걸 찍어야만 일을 시작할수 있다고 하는거예요. 그때 저는 정치적인 색깔이 없었지만, 일단은 그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거기를 이틀만에 나왔어요. 어떤곳은 또, 제가 하고 싶은일은 거기서 나한테 주어진 일의 5퍼센트였고, 나머지 95퍼센트는 내가 하기싫은일들, '이런걸 내가 해야해? ' 하는 일들인 곳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곳은 일년반을 다니다 그만뒀죠. 그러면서 그때 저처럼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아까말했던 그러한곳들과는 다른일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 셋이 모이게 됐어요. 처음에는 계획을 짰어요, 돈이 얼마 필요하고 단체 네트워크는 이러저렇게, 근데 그렇게 계획을 짜보니까 이걸 준비하려면 10년은 걸리겠는거예요. 그래서, 그럼 이거 다 버리고 발가벗고 시작하자 합의했죠. 그렇게 시작하면 빤스하나 얻으면 나아지는거 아니냐, 하고. 십만원 이십만원 삼십만원, 가지고 있는 작은돈 모아서, 우린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때 모은 우리의 자본금이 190만원이었는데, 아시는 청소년수련관 관장님 한분이 내주신 사무실에 165만원짜리 컴퓨터 하나를 놓고 시작했죠. 자본금 190만원에서 165만원짜리 컴퓨터. 애플컴퓨터 알죠, 초창기 그거? 그거를, 하루에 열번을 닦았어요. 그 생각이 나는데, 하여튼 그렇게 우리는 발가벗고 시작했지만, 우리가 그속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할 수 있었던건, 십년 이십년 후의 우리의 성공은, 남들이 생각하는것처럼 큰 단체가 되고 조직이 오십여명이 되고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의미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것이라 보았기 때문이예요. 비록 두친구는 중간에 나갔지만, 그래도 계속 품에 뒷돈 대주는 친구가 되었고, 품에 저만 남아서 일하게 된건 17년 되었어요. 그 시간동안 저희 품은 자유로웠고 지금도 저희 품은 자유로워요. 엷여덟해나 되었지만 감사를 받은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런 자유안에서 품은 당당해요. 저희는 정부보조금 준다고 해도 안받고 시설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게 저희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식이거든요. 

◆ 주주제도를 쓰고 있는 품

보통 우리가 쓰는 후원회원이라고 하는 제도가 아니라 좀 다른 형태의 제도- 주주라는 제도를 쓰고 있는 품. 최근에 주주들의 힘을 얻어서 지하를 탈출했다는데, 품이 주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이유는? 

"복지단체,시민단체에서는 후원자를 '개발'하고, '관리'한다는 용어를 쓰는데, 그 개발과 관리를 위해 직원 워크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후원자를 많이 얻어서 우리에게 돈을 내게 할것이냐, 어떻게 하면 그들을 잘 관리해서 우리 단체를 빠져나가지 않게 할것이냐 하는 내용으로. 제가 저희직원을 그 워크샵에 보내본적이 있는데, 그 일주일동안 한마디도, 정말 단 한마디도 없었던게 '나한테 후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사람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예요. 그것은 전혀 없고 오직 개발과 관리에만 초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박노해 선생님과 강대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품의 주주제도를 구상하게 되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단어가 GIVE AND TAKE, 주는만큼 받아야 한다는, 내가 한만큼 투자한 만큼 어떤 이익과 자본을 다시 돌려 받아야한다는 건데, 눈에 보이는 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를 하는것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주주는 주식을 사고 배당을 받아서 그곳이 잘되면 많은 이익을 가져가요. 그러면 우리 품의 주주들은, 예를 들어 우리 주주한분이 매월 1만원을 우리에게 투자하면 우리에게서 2만원을 돌려받는게 아니라, 10만원 20만원을 훨씬 더 넘을 수 있는 '사회적 가치' , 그것을 돌려받는거예요. 지금 당장 눈에 보이게 돌려받을순 없지만 '가치'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그것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희 후원자가 되었죠.
현재 품에는 주주가 300명 있는데, 이 300명이 모아지는데 10년 걸렸어요. 사실 제가 정말 힘들었던 부분이 뭐냐면, 예를들어 기업이라든가 '있는사람'한테 가서, '저 심한기입니다.'하면, '품, 아 많이 들어봤어요 좋은일하시던데요' 하고 사실은 잘 모르시면서 그런얘기를 하시는데, 그분들에게 '한달에 오만원씩만 내주십시오' 라고 말하면 그분들이 '거기서 정확히 어떤일을 하죠?' 물어요. 그럼 제가 설명하죠. 저희는 가난한 아이들, 집나온 아이들, 지역청소년들과 함께 문화작업을 하는 단체니까, 쉽게 말하자면 애들이랑 노는거니까, '애들하고 논다'고 말하면 돈을 안주시는거예요. '저희는 장애인들하고, 가출 청소년,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하면 만원을 주시고요. 십년전에는 더 심했죠. 그래서, '아 저렇게 노는것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모으는게 쉽지 않았어요. 한달에 한명 두명, 조금씩 늘어서 10년이 넘어서야 300명이 되었는데, 그 300명은 잘 안빠져나가요. 그분들은 '너네가 어떤일을 해도 사회적인 가치가 있다' 라고 믿어주시면서,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너희같은 친구들이 일하는곳에 내가 만원내는것이 아깝지 않다' 고 하시는 분들이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품이 지금까지 유지가능했던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십년넘게 저희 주주가 되어주신분들은 이제, 정말 돌려가져가시고 있어요. 품이 지금 열여덟해 되는데, 초창기에 품과 함께 했던 애들이 이제는 다 20대 후반 30대, 40대가 되어 있고, 그들이 자식이 크고 있고, 그러다보니 품에는 거의 모든세대가 다 있어요. 품은 아이들을 만나는 곳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10년 20년 만난 애들, 그 애들이 자라서 낳은 그들의 '자식'을 만날일이 생기는거예요. 몇년전에 함께 하면서 혼내고 가르치고했던 아이가 아버지가 되어 낳은, 아버지하고 똑같이 생긴 애기가 나를 쳐다보고, 잠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게 제겐 굉장히 소중한 행복감을 줘요. 

주주제도는 눈에 보이는 이익 말고도 이렇게 큰 가치와 행복을 주기에, 가끔 제가 복지관이나 시민단체의 후배들에게 '야 너희들도 이런방식으로 해보지 않으련'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다들 동의는 하지만, 자신들이 쉽게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선뜻 주주제도를 실행하지 못해요. 우리들이 그런것들을 과감하게 버릴수만 있으면 할수 있는게 너무나 많은데."

◆ 사람을 키워내는 품

품의 가장 큰 일중의 하나는 사람을 키우는 작업. 실습생을 키우거나 인턴쉽으로 인재를 배출하거나, 문화복지 아카데미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키웠고, 모 친구처럼, 품에는 실습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친구도 있는데, 광주가 단체활동이나 지역모임안에서 갖고 있는 고민중의 하나가 후배양성에 대한 부분. 품은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저는 이게 오늘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여기계신 모든분들에게도.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만이 살길이다 이런말은, 너무 중요해서 다시 얘기할 필요도 없죠.
무슨일을 하든, 예산이 없어지고 정책이 바뀌고 시장이 바뀌는 온갖 풍파를 견뎌내는 힘, 또는 다른 풍파가 오더라도 견뎌낼수 있는 힘 하나가 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키워내려할때 가장 먼저 해야할일이 '반성' 이라고 봅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

사실 '야 요즘 광주 대학생들 안움직여', '젊은 예술가들은 돈 안주면 안움직여', '야 왜 시민영역엔 여자만 있고 남자는 안보이냐'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이 얘기는 10년전에도 있었어요. 근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또 저희가 여러가지를 시험해보니까, 우리는 반성이 없었던것 같아요. 복지관이나 청소년 수련관에 청년이 많고 대학생들 북적거리고 볼룬티어가 많으면 그게 굉장히 좋은 자원이 되는데, 우리는 항상 그런 자원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희망하기만 했지, 정작 그들이 왔을때 그들을 맞이할수 있는 준비는 하나도 해놓지 않은거예요. 어느 영역이나 다 마찬가지예요. 제 후배중에는 이제 기관의 관장인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은 요즘 대학생들 젊은애들 대기업 취업준비만 하려 한다고, 볼룬티어 안한다고 욕을 해요. 그래서 제가 '너희는 뭘 줄껀데?' 하고 물어보는데, 그러면 그들은, 준비한게 없어요. 기껏해야 자원봉사 시간써주고 활동 기록해주는거. 기관이나 단체에 온 아이들 청년들은 개개인이 다 달라요. 각각 뜻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갖고 있는 장점이 다르고 꿈이 다르죠. 그런데, 그 사람을 맞이하는 집 주인은,맞이하는 준비를 깊게 한적이 한번도 없으면서 늘 손님을 기다려 왔던거예요. 이곳을 찾아오는 그들이 원하는게 무엇이며, 그들에게 우리가 다시 줄수있는것이 무언인지를 준비해야하는데, 그 준비를 하려면 그들이 와서 자원봉사하는시간의 몇배는 들여야 해요. 그런데 다들 그 시간 마련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해요.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는한, 평생 젊은이들은 오지 않는거예요. 기관에서 자신의 기관에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 포스터 만드는데는 500만원씩 들여요, 포스터 만드는데만. 그러고는 전국 대학가에 뿌리고 대학 정보센터에 뿌리고, 리플렛 멋있게 만들어서 기관에서 하는 일들 홍보하는데다 돈과 에너지를 다 쓰죠. 그러나 그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기관에 관심있어서 온 사람들 개개인을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듣고 그들을 사랑할만한 시간은 없다는 거예요, 그런거 만드는데 드는 시간과 돈은 있으면서. 작은 단체든 큰 단체든 우리는 그런것들에 대한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 품은 기존에 청소년복지시설이나 단체에서 하지 않은 독특한 방식의 일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원봉사자가 넘쳤어요. 그때는 핸드폰이 없어서 문자를 실시간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시기, 삐삐를 사용하던 시기였지만, 사람이 필요해서 어떤친구한테 연락을 하면 한시간안에 30명을 모아 데려왔던 때가 있었어요. 왜냐면 품에서의 일이 일단 재밌었거든요, 신기하고. 그런데 5년 10년이 되면서 저희와 같은 단체들이 많아지면서, 이걸 하는게 더이상 메리트가 없어지면서 품에도 사람이 끊겼어요. 오직 남아있는건, 품에 미친애들, 품에 꽃혔던 애들,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친구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저희가 생각한게, '야 이게 품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우리 공동의 문제다' 였고, 그래서 십년전부터 청년을 키우는 일에 집중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카데미를 열어서 청년들에게 다르게 사는삶에 대해 가르치면 아이들은 충격을 받았고, '난 아카데미 나가면 모든지 할수 있어' 하고 갔어요. 그러나 한달있다가 그 애들한테 연락을 해보면 그때의 의지와 희망은 다 전멸되어있어요. 왜?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그들이 예를 들어 흥사단으로 지구의 평화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서 여기서 봉사 하겠어라고 뛰어 들어 갔는데, 그곳은 그 아이의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그들의 뜻을 받아주고 어울러주고 그것을 다시 상승시켜줄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채 당장 행사에 그 애를 보내버리는거예요. STAFF 태그 하나 달고 행사에 보내버리고, 끝나도 피드백조차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다시 아 이게 현실이구나하고는 절망하는거예요. 에이 사회복지사 시험봐서 빨리 자격증 따고 안전한데 가야지, 혹은 공무원시험봐야지. 

그래서 품은,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기관방문이나 자원봉사를 오면, 그들의 한시간을 위해 열시간을 준비하는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아이를 만날준비, 그가 어떤 성향이고 무슨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 들어줄 준비. 예를들어 품에서 자원봉사를 하지만 미술에 관심이 많은, 비록 전공은 회계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열여덟해된 품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그의 꿈을 자극 시켜줘요. 품에 연결되어 있는 좋은 예술가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주고, 또 공부도 같이 하고. 이렇게를 5~6년 하니까, 많지는 않지만 품에 왔던 애들은 끝까지 남아서 함께하고, 혹 다른곳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겸손하게 오래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것들을 통해 얻은것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모두가 청년들을 맞이할 준비,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먼저 해야한다는겁니다."

네팔 이야기 

2005년 처음 네팔에 가셨고 그 이후로 쭉 네팔에서 문화작업들을 해오고 있는 심한기 대표. 무엇이 그를 네팔로 이끄는가

"아 이건 정말 하고 싶은 얘기예요.
희말라야? 네, 전세계에 아름다운 나라가 많고, 대한민국도 아름다운 나라라, 자연도 좋고 사람도 좋은데,
한국에선 우리가 아무리 크고 높은 산을 가도 삼일이면 끝이 나는데, 희말라야를 가면 삼년을 가도 끝이 안나요. 그곳에는 우리가 담을 수 없는 거대함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예요. 네팔에는 배울게 너무 많아요. 모든 부분에서.
네팔은 세계최대빈곤국가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220불, 지금환율로 치자면 27~28만원이예요. 일년소득이. 네팔에 잘나가는 미술선생님 봉급은 한달에 백오십불정도. 그러니 우리나라하고 엄청 차이가 많이 나요. 현재 네팔엔 세계의 NGO단체들이 많이 들어와있고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네팔 사람들은 원래 가난하기때문에, 자연하고 똑같이 살아요.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를 제외하고 네팔의 99%는 나무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갈대가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바람이 가는 그 방향으로 사람도 같이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방식속에서 배울게 굉장히 많아요. 

사실 품이 처음 네팔에 갔을때, 그때 우린 '야 네팔은 가난한 나라고 문화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나라인데 우리가 가면 그들에게 뭔가 자극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대한민국에서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 잘 나가는 사람들 교사들을 모아 그곳에서 우리가 하던 방식으로 아카데미 워크샵 세미나를 3년을 했었어요. 근데 3년을 하고 나서, 쉽게 말해 우린 완전히 망했죠. 왜냐구요? 우리가 좋다고 생각한 그것이 그들한테는 전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우리는 한국에서 '문화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활동들도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의 삶과 일상이 되도록 해야한다' 같은 말들을 많이 하는데, 네팔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린 돈많이 들여서 사람을 모으고 거기가서 그걸 한거예요. 공공미술 워크샵, 미디어 워크샵, 스토리텔링 워크샵 같은거. 예를 들어볼까요. 게임이나 모바일은 대한민국이 최고잖아요? 그래서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이들이 스토리, 말, 문자와 언어를 잊어버려 가기에, 정말 소중한것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우리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네팔에도 스토리텔링작가를 데려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서 워크샵을 했어요. 했는데, 망했어요. 왜 망했을까요? 그들에겐 아직 디지털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만일 내일 두시에 총파업이 있다고 쳐요, 그러면 한국은 그걸 알리려고 한달전부터 인터넷이나 TV 핸드폰 등으로 전달하잖아요, 근데 네팔에선 총파업을 하고 싶다 그러면, 구두로 전달해요. 근데 이게 핸드폰보다 더 빨라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옛날에 한국도 그랬어요. 동네에 꼬마애 누가 뭔가 했다 하면 그 다음날이면 저쪽 마을 할아버지가 '너네 그랬대매?' 했던시절이 있었죠. 네팔 사람들, 지금 그렇게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그랬으니, 한마디로 뻘짓을 한거죠. 많이 깨졌어요.
그러면서, 처음엔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려고 시작했던 일들이 온통 박살이 나면서, 우리는 무릎꿇고 '아 이렇게 하면 안되겠습니다' 하고 그들에게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네팔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우리가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먼저 배우는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한거예요.

네팔에 가면 일단 좋은게 뭐냐면, 그곳은 슬로우라는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식당에 가서 칼국수를 시키면, 주문하는 순간 아저씨가 창고로 올라가서 밀가루를 꺼내고 반죽을 시작한다는 거예요. 천천히 그것도 딴얘기 해가면서.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그런것들이 어떤가요? 돌아버리죠, 물 나오고 단무지 나오고 조금 얘기하다보면 나와야되는데. 그런데 네팔 사람들은 주문하는 순간 아저씨가 창고 올라가서 밀가루 꺼내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느림과 기다림이 삶이 되어 있어요.
삶, 작은 일상에서 예술가들도 우리와는 달라요. 네팔은 종교의 나라인데, 돈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신에 대한 가치로서 예술을 하는사람이 전체 예술가의 80%예요. 대한민국에선 예술가가, 신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나의 온전한 예술의 힘을 평생 쏟겠다 하는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네팔에선 거의 모든 예술가가 그렇다는거죠. 평생 만다라만 그리거나 평생 붓다의 얼굴만 그리거나. 그래서 네팔에 간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감동이다 뭐다를 떠나서 '또 다른 삶의 방식' 이 있음을 보고 그런것들을 전달 받는거예요. 예술의 영역만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와는 또다른 삶의 방식을 굉장히 많이 배울수 있는 곳이예요. 

거기다 보너스가 희말라야예요. 제가 처음 희말라야 트래킹을 짧게 했을때, 첫날, 자고 일어나 아침에 희말라야에서 커피를 한잔 먹는데, 제가 늘 달력에서만 보던 설산이, 그 산이 제 눈앞에 있는 광경에 심장이 멈추는것 같았어요. 달력이 거기 있는거야. 전 제가 특이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제가 끌고간 많은 인간들이 거기서 다 심장이 멈추는줄 알았대요. 자연이 주는, 가공되지 않은, 설명할수 없는 감동들. 산은 한국의 지리산도 있지만, 지리산과는 또다른.
또한, 네팔은 육천미터 고지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산에 가면 그곳에서 애키우고 축구하는 매력적인 모습들을 볼수 있다는 거예요. 네팔에서 제가 항상 가는 지역이 따로 있는데, 전 그 마을 명예회장이기 때문에 외국사람이 절대 들어갈수 없는 사원을 갈수 있어서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항상 데려가요. 

오늘 저 소박한 꿈이 하나 생겼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그곳으로 모시고 싶어요.
광주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광주분들이 모여서, 예술가든 시민활동가든 모여서, 네팔에 함께 가는 꿈을 좀 꿔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제가 민간통제구역도 모시고 다니고. 네팔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은 조장, 몸을 다 잘라서 독수리에게 주는 조장을 하는데, 죄를 너무나 많이 지은 사람은 조장을 못해요. 그런 사람들은 등가죽을 벗겨서 말린후에 아주 영험한 스님께서 만다라를 그리는데, 그것을 십년 이상 보관을 해야 그사람의 업이 없어진다고 그들은 생각해요. 저는 그 만다라도 봤어요, 그건 잘 안보여주는데. 하여튼 광주의 식구들과 그런곳에까지도 같이 가보고싶은 마음이 오늘 생겼어요. 우리가 네팔 트래킹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예요. 트래킹만 생각하면 여행사 가시면 돼요. 전 여기 계신분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하는 여행을 함께 하고 싶어요. 농담이 아니고, 그냥하는말도 아니고요, 여기 새갈래에 와서 제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예요. "

앞으로의 계획

"읍써요 계획.
제가 품을 하면서 십년간 에너제틱하게 살았지만, 삶이나 시간이나 정신을 갉아먹었던 부분도 있어요. 그건, 너무 목표와 꿈을 세워놓고는 거기를 향해 달려 가느라고 일이 많아서 그랬던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다음 계획이 없어요. 저희 직원들과 제가 하는 이야기가, 목표잡지 말자는 거예요. 목표잡지 않는게 우리 목표.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또 뭘 해야할지가 자연스럽게 보여서 거기로 넘어가는건데, 전에 우리는 목표를 잡고서 너무 욕심을 내는 바람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시간을 상하게 했었어요. 그랬기에 지금은 목표가 없는거예요. 목표가 없지만 제가 진정성 있게 살아가면 좋은 시간이 또 온다고 믿고 있어요. 저희 품의 식구들이나, 저희를 만나는 아이들도 모두. 목표를 세우지 않고 살아가기. 그러나 가슴속에 희망을 간직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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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가까이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청년들과 함께 하며,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돈보다는 의미와 가치를 위해 인생을 살아온 심한기 대표. 뜻을 따라 살았기에 삶이 가르쳐주는 많은 지혜들을 얻은 그는 겸손하고 따뜻한 미소로, 새갈래에 온 이들에게 그 지혜를 나누어 주셨다. 새갈래 안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냄새 나는 분을 만나게 되고 배우게 되서 나는 참 복도 많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내 20년후를 가만히 그려본다. 20년후엔, 나도 저런 모습일수 있을까. 

 

 

- 행사명 :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갈망하는 네트워크 새.갈.래
- 일 시 :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18:00~20:00
- 장 소 : 대인예술시장 내 상상의 곳간
- 주최/주관 :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 후    원 : 문화체육관광부, 광주광역시,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팀 느티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