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품 뉴스들(~2019)[2018.05] [품-마을배움터] 완연한 여름의 온도에, 품의 소식을 전합니다.

2021-07-29
조회수 376

안녕하세요.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입니다.

따뜻함을 느낄새도 없이 뜨거운 날이 불쑥 찾아왔네요.

불쑥 찾아온 뜨거움에, 시끌한 선거 덕에 모두 정신없는 나날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주 품소식은 지난날 품 식구들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던 글을 통해 일상을 나눕니다.

주주님들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

가끔 주주님들도 품에게 소식 남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ㅎ


20180521_품(마을배움터 주간나눔)


■ 한 주 마음나눔



▪ 무당/심한기 : 품은 문화적인 일상을 살고 있나요?


                                                                        

“문화적” 이란 말의 뜻은 무엇일까?

“문화적 일상”이란 말은 뜻은 무엇일까?

“나는 문화적인가? 품의 일상은 문화적인가?”

너무나도 자주 쓰는 단어나 문장들을 가끔씩 다시 들춰보는 시간은 소중하다.

품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문화” 그리고 “문화적”이란 표현의 뜻을 함께 풀어가 보자.

 


일단 포괄적이고 통합적 의미 속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일상의 언어, 생각, 행위(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여 지는 예술적 행위가 없더라도 스스로 또는 함께 하는

집단 안에서의 언어, 생각, 행위들을 서로 돌아보거나 성찰하려는 태도”가 먼저 떠오른다.

 


문화는 상호적인 교류, 교감, 전이를 동반해야 하기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별화(존재)를 시작으로 상호적이고 집단적인 접촉과 교환과 변이가 일어난다.

집단의 환경이나 개별의 특성에 따라 한 개인의 존재감이 집단 전체를 흔들기도 하며

반대로 한 개인의 노력이나 움직임이 집단 안에서 묻혀버리거나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때문에 돌아봄과 성찰은 개인은 물론 한 집단의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일상적 태도들이 반복될 수 있다면 개인으로부터 전해지는 일방적 힘들이

분산될 수도 있고 개인으로부터 전해지는 작은 존재감들이 들어나고 공유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늘 알고 있으면서 못하고 있는 나의 문화적 태도들이 떠오른다.

건강한 문화적인 상호작용들이 현실 속에서 가능하기 위해서는

“표현을 위한 용기“가 먼저일까? 아니면 ”편안함을 위한 세심한 노력“들이 먼저일까?

이는 ‘민주적 일상의 실천’과 다르지 않으며 이 가지의 명제 역시 상호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집단 안에서 조금이라도 큰 힘(경험, 지식, 지위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세심한 노력들이 먼저 가능해야 한다.

 


예술을 가장 쉽게 표현하면 “다양한 방식의 표현, 다양한 방식의 창조적 표현”이 된다.

어설픈 연결일 수도 있지만 “문화적 일상, 민주적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예술적 일상을 가능하게 한다.” 라는 가설을 상상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화적인 것은 곧 예술적인 것과 연결될 수 있다.

일상은 매우 비문화적인데 예술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소통이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일상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일상에서문화와 예술은 매우 긴밀한 상호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해보자.

 


예술가들이 가지는 남다른 특별함 중에 하나가 바로 “관찰의 힘”이다.

그 관찰의 힘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세심한 관찰의 반복은

서서히 객관적인 조건과 판단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문화적 일상도 역시 관찰의 힘이 중요하며 여기에서의 관찰은

세련된 시각적 관찰이 아닌 마음속의 따뜻함과 세심함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품은 문화적 일상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품이 문화적 일상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언어, 생각, 태도, 행위)이나

배려들이 시작되면 좋을까? 로의 연결을 위하여

나부터 할 수 있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려 한다.



▪ 고민정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

주체성

집요함

사소한 넘겨짚음

윗사람의 이야기

일상적 주체성, 일상적 민주시민성은 곧 일상적 디테일(토대, 찌질한 이야기)이 살아나는 것

섬세함을 캐치하고 바라보려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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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카톡 메모장에 적어놓은 말들이다.

지난 주 스쳐지나가던 생각들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공통점은 내가 부족한 것, 채워가며 좀 더 나아지고 싶은 것, 고민지점,

알면서도 잘 고쳐지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조급함보단 꾸준함이 중요할 것이고,

찌질한 작은 실천부터 만들어가야 할 듯하다.

(지난 주에 말했던 매일매일의 사진&글 기록은 매일의 사진이 어려워 하루 일기를 쓰고 있다.)


지난 주 유난히 아이들을 만나는 준비, 아이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아이들의 일상적 배움의 과정을 고민하면서 생각이 뻗어지지 않고 막히는 부분

그 이유는 나의 일상적 주체성, 일상적 민주시민성이 디테일하게

섬세하지 않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되는 한 주였다.

 


‘나무에서 숲을 보다’라는 책은

저자가 너도밤나무 숲을 1년간 기록하고 관찰하며 쓴 책이며 아주 낭만적이고 과학적이다.

아직 많이 읽진 않았으나 꽃을 하나보더라도

나무 하나를 보더라도 아주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글을 읽는데 그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즐거움과 호기심, 발견의 벅차오름이 느껴져

나도 덩달아 마음이 움찔움찔해진다.

지나칠 정도의 묘사와 관찰은 숲의 역사를 이해하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한다.

 


책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자꾸만 숲 전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꽃잎 하나하나 나뭇가지 하나하나 사람으로 생각되어졌다.

그 섬세한 관찰 속에서 그 나무(사람)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아가고

그 나무(사람)가 사는 숲(주변 환경)까지 바라보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읽게 되었다.

섬세한 관찰이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가며 숲을 바라보게 되는지

자연의 기록을 통해 나의 일상과 마을배움터와 연결 지으며 생각하기에 참 좋을 듯하다.

 


지난 주 일상적 주체성, 일상적 민주시민성에 대한 생각 또한 놓치지 않고 바라보기에

저자의 지나칠 정도의 관찰과 묘사가 지속적으로 자극을 줄 듯하다.

 



▪ 김양수 : 나이를 먹는다는 것(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다 / 나이테의 철학)



 지난 주 스승의 날. 품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청년들이 품 사무실에 찾아왔다.

품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지금은 청년이 된 친구들. 그

들에게 품은 스승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날은 항상 조그마한 마음을 담아 품 사무실을 찾아오게 된다.

 


저는 스승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하는가를 다시 바라봅니다.

                                                                                                                    - 맹샘 메시지 중...

 


그날 저녁 맹샘이 단체 톡 방에 올린 메시지이다.

스승은 아니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예전부터 나는 품을 설명하면서 나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늘이 되어 잠깐의 쉼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열매를 맺어 욕구를 채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아래 있지 않아도 그들이 필요하다 하면 자신의 나뭇가지를 내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품은 참 대단하지만 미련하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품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가득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무처럼 산다는 것.

나무는 나이를 위로 먹는 게 아니라 옆으로 먹는다.

나무철학 제 1장의 이야기이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에는 나무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나무의 나이테는 다 다르다.

그리고 모든 나무가 나이테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열대지방의 나무들은 나이테가 잘 보이지 않으며,

대나무는 나이테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나이테는 나무의 삶과 시간이 온전히 축적된 결과물이며,

나이테를 많이 만들수록 삶의 지혜는 깊어진다고 한다.

 


인간에게 나이테는 무엇일까?

표정, 말투, 사고, 글 등 모든 것들이 인간의 나이테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이를 먹는 것 보다 촘촘한 나이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한다.

맹샘이 스승의 날 보낸 메시지처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할까?

촘촘한 나이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슷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사는 나무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듯,

나이든 사람도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나무가 나이를 먹어가며 다른 존재들에게 베풀면서도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남에게 많이 베풀면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매일 위로 성장하면서 옆으로 나이를 먹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행복하다.

-1장 마지막 부분

 

단단한 나이테를 가진 두꺼운 줄기의 나무는 높으면서도 넓게 가지를 뻗고 있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닌 넓어진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넓어지기에 높아질 수 있고 그러면서 그 안에 많은 것들을 품고 나눠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지난주를 보내며,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나

유독 날씨 때문인지 한주가 참 힘들고 피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습함과 더위에 약한 나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한주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저녁 유리글라스에 양주를 살짝 따라두고

한 모금 마시며 지난 한주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본다.

자신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규민.

큰 흔들림 없이 자기 할 일을 찾아가고 있는 민정.

동아리 홍보물로 조금은 예민해진 성희누나.

사무실의 엄마처럼 소소한 잔소리와 함께 정상궤도를 찾아가고 있는 맹샘.

그리고 자신을 찾고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섭샘이 아른아른 스쳐지나간다.

일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함에도 일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유독 심샘은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의 상태를 물어보고 바라보고 있지만 심샘에게 그러한 과정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주는 심샘을 세심히 바라봐야겠다!


▪ 문성희  


# 사람들을 만나며..

 


품에 와서, 그리고 네트워크사업이 시작되며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에게서는 개인이 풍기는 고유의 느낌이라는게 있는 듯싶다.

그 또한 상호적인 영역이라, 나와 상대가 맞닿는 과정에서 서로의 느낌이 만들어지게 되는 듯하다.

서로의 힘이 맞아 엄청난 에네르기가 서로 발산되고 다시 자기에게로 흡수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싶다. 그런 셀레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어떤 상상이 함께 더해질까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런 상상과 에너지가 함께 있음을 확인한다.

나 스스로에게 자극으로 돌아온다.

    

# 매년 다른 세상의 모습들

 


매년 같은 세상을 살았는데, 보이는게 다르다.

계절마다 세상이 매번바뀌는데 서른살 이전의 나는

날씨와 온도의 변화 외에는 다른것들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듯 하다.

서른이 넘어 이제야 보이고, 새롭게 보이는것들이 생긴다.

해가 갈수록 안보이던 것들이 더 보이고 느껴진다. 그것이 나이듦의 매력일까?

그렇다면... 나이먹는 일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느껴졌다.

세상에 피어나는 꽃들, 땅아래 뿌리내리는 작은 풀들을 바라보면.

매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시간이 낯설고 즐겁다.

 


# 나무의 수사학.

 


나무에 관한 공부를 하자고 하셨다. 서로 다른 책들을 골랐다.

나는 나무의 수사학이라는 책을 골랐다. 몇장의 책을 넘겨보았다.

작가들은 나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찰하고 있는지 적혀있다.

그리고, 얼마전 부산 보수동 헌책거리에 김종철 선생님의 책이 눈에 띄어 잡아들고 읽었다.

그 책 뒤편에 적힌 글이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같다.

 


나무 한 그루가 상처를 입으면 자기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중요합니다.

저는 시인들의 마음이 대게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 방식이거든요...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만물은 형제라는 관점이야말로 모든 시적 은유의 근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가을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기 위해서도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 속에 하나로 맺어져 있다는 생각이 여기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시적 감수성의 본질이고, 시의 마음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다른 존재. 다른 생명으로 보이는 것들도 내 생명의 일부라고 보고,

시인은 생명에 가해지는 상태에 마음 아파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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