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인문학, 내 삶에 당당할 수 있는 힘이죠”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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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연결된 인문학 공부는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길러준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제공

삶과 연결된 인문학 공부는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길러준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제공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심한기 대표
현장 경험 기반으로 삶과 연결짓는 공부 해
문화적 상상력·인문적 사유 기를 수 있어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심한기(46·사진) 대표는 벌써 20년째 단체를 이끌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을 기반으로 대안적 청소년 복지와 청소년 문화운동을 치열하게 펼쳐왔다. 10대들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지난 1년6개월간 ‘인문학교’의 교장을 맡기도 했다. <우리는 인문학교다>는 그가 같은 지역에 사는 3명의 10대들과 시작한 인문학 공부의 결과물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인문학교는 아이들이 세상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심한기(46) ‘품’ 대표
심한기(46) ‘품’ 대표


-인문학 공부를 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고 학교 밖 인문학 단체들도 많아진 것 같다. 어떻게 보나?


“언뜻 보기에는 인문학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 같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이 인문학 공부를 하겠다는 자발적 동기를 갖는 건 힘들기 때문이다. 누군가 옆에서 제안을 해줬거나 학교 교육에 답답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인문학 공부를 찾는 것 같다. 인문학 단체들이 부쩍 늘긴 했지만 유행에 편승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인문학적 동기나 시각을 줘야 하지만 강사의 일방적인 강의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예전부터 ‘인문학’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천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많았다. <길은 학교다>라는 책도 청소년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봉사활동을 한 내용을 쓴 것이다. 길 위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경우이다. 언제나 기존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아이들은 있었던 것 같다.”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계기가 있었나?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책을 내는 것도 그랬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하자고 하면 누가 따라오겠는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지역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문화기획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걸 아이들도 깨달은 것이다. 글 한편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삶과 연결된 공부에는 열정적이었다. 충분한 동기가 뒷받침되니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습 다큐’라는 형식으로 책을 낸 이유는 뭔가?


“처음부터 공부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약속했다. 누군가의 글을 필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나 공부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드물다. 그런 일상적인 기록을 하면 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 자극이 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한테 우리의 인문학 공부 과정을 알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살아가면서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던 거다. 이런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참고자료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300~400권만 찍는 작은 출판사라 책을 내는 과정도 굉장히 수월했다.”


-인문학 전공자가 아닌데, 어렵지는 않았나?


“오히려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수업 형식도 자유로웠다. 기존 특강사 중심의 강의에는 회의를 느꼈다. 당장 반짝하는 통합적인 지식은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삶과 연결짓는 건 힘들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현장 경험이 있었다. 커리큘럼은 없었지만 자발적 학습이 잘됐다.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다음에는 뭐를 공부해야 할지가 나오더라. 큰 틀은 역사를 중심으로 공부하되 우리의 활동과 연결짓는 것이었다.”


-특별히 인문학 공부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인문학자들이 보면 ‘무식하다’고 볼 수도 있다. 전문적인 철학이나 역사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인문학을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아마 어려운 이론이나 철학 등을 다뤘으면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문학이 삶을 가치있게 하고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한다고 생각했다. 주로 역사 공부를 했다. 현재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살아온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기 역사를 제대로 조명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살아온 얘기들을 꺼내놓았다.”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찾는 곳이라는 편견도 강한 것 같다.


“물론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책’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고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학교 수업은 소홀히 하고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는 게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학교 교육과 분리되지 않도록 선생님과 연락도 하고 부모님의 동의도 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청소년을 위한 문화활동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인문학교’ 수업을 계기로 하반기에는 인문학 강의도 본격적으로 할 예정이다. ‘삶을 탐구하는 인문(人文) 놀이터’라는 과정이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문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사유는 기본이다.”


-청소년 시기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아이들도 공부를 했지만 나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삶을 바라보는 게 10대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자기 삶과 연결해서 하는 공부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학교 교육 안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사고가 정형화되지 않으니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대학을 가든, 사회운동을 하든, 문화기획자를 꿈꾸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가 생긴다.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고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인 정신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87869.html#csidx5e7b4869724fc689e3e7fcc7a72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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