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일상] 유현희 졸업식 "감사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1-07-28
조회수 84


졸업식 잘 마쳤습니다.
생각지 못하게 많은 분들이 오셨고, 기대에 넘치는 많은 축하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재미난 공연을 준비해 준 무늬만 아이들과 청년들.
짧지 않은 시간과 기억들 정성스레 영상에 담아 준 품 식구들.
더운 날, 고마울 걸음 해주신 손님들은 물론,
멀리서 마음 전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눈물없는 즐거운 졸업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역시 그건 무리였나봐요^^;;
결국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지만, 함께 살아 온 시간에 대한 기쁜과 감사의 눈물이기에
그 또한 아름답게 기억하렵니다.

이런 날을 있게 해 준 나와 품이 참으로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저도 품도, 앞으로의 과정이 쉽지많은 않겠지만...
이제껏 그래왔듯 또 아파하고 성장하며 찐덕한 삶을 만들어 갈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새 학기를 준비하는 품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모두에게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더하기.
품의 10년을 마무리하며 졸업식에 나눈 이야기를 함께 전합니다.
저의 또랑한 목소리를 상상하며 읽으시면 더 좋으실꺼예요! 하하^^



품에서의 10년을 마무리하며

 

2002년. 어쩌다 가게 된 아카데미에서 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지했고 막연했다. 내가 몰랐던 다른 세계에 놀랐고, 어떻게 그토록 모를 수 있었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무언가 얻어맞은 듯 머리가 아팠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알 수 없어서 더 알고 싶었다. 삶을 이끄는 강력한 신호를 만난 것 같은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품을 붙잡았다.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후속 활동에 참여했고, 오라는 데는 다 따라다니며 곁눈질을 했다. 그러다 인턴제의를 받았다. 2003년 여름이었다.

그 날 우리는 수유의 한 호프집에 있었다. 심샘은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가장 어려운 때에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다. 유토피아. 품에 살면서 종종 그 때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유토피아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막연히 동경했던 품은 완전하지 못했고 오히려 상처투성이였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완전한 상태라기보다 그를 위한 완전한 과정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지독히 소통했고, 지독히 치열했다.


품에서의 10년. 품은 나에게, 나는 품에게 무엇이었을까?

품에서 나는, 새롭게 말을 배웠다. 복지의 다른 얼굴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청소년 시절 내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문화이고, 자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예술 언어들을 만났고, 익숙해서 체감하지 못했던 자연의 속삭임도 듣게 되었다. 거칠고 두려웠던 십대들의 언어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욕도 배웠다. ^^;


품에서 나는, 화내는 법을 배웠다. 화낼 일도 없고, 화낼 줄도 몰랐던 내게, 품은 무엇에 분노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가르쳤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비롯되므로 평화의 방벽을 인간의 마음속에 쌓아야 한다.” 故강대근 선생님이 알려주신 유네스코 헌장의 첫 구절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평화는,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내 안의 ‘화’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 안의 못난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참으로 긴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함께 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품에서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살면서 한번 만날까 싶었던 큰 스승들, 당당히 새 길을 만들어가는 선배들, 살듯이 일하는 지역의 많은 활동가들,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멋진 청년들과 십대들... 그들은 내게 늘 배움이었으며, 때로 나도 그들에게 배움이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품에 살면서 나는, 이십오년 살면서 한 것보다 더 많은 여행을 했고, 다채로운 연애를 경험했으며, 그럭저럭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샘 앞에 기획서 들고 서서 바들바들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도 밑천이 바닥날 판이긴 하지만, 공모서 하나는 제법 쓰게 되었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배운 것들을 최대한 알려주려고, 내가 겪은 어려움들을 최대한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배들에게는.. 글쎄, 어떤 후배였을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까칠하고 예민한, 어려운 후배가 아니었을지.

 

품에서의 10년. 일일이 다 헤쳐내기도 어려울 만큼 단단한 시간이었다.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었는데.. 생각할수록 참 고마운 시간이다.


이상하다. ‘품을 왜 그만두느냐’고 내게 묻는 사람이 없다. 내가 나갈 사람처럼 보였던 걸까? 아님, 내가 빨리 나가길 바랐나? 하하. 내게 ‘어떻게 10년을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은 많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만들어 온 선배들 앞에서, 또 앞으로의 시간을 만들어갈 후배들 앞에서 조금은 낯 뜨거워지는 질문이다. 나는 그냥.. 도망치기가 싫었던 것 같다. 비겁해질까봐 두려웠고, 두려움을 합리화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시작이었기에 언제까지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언제든 당당했으면 했다. 그리고 조금은 그리 된 거 같아 다행이다.

 

그럼에도, 10년의 시간 동안 내 삶이 자리했던, 품의 품을 정리하는 마음은 쉽지가 않다. 퇴사 결정을 한지 거의 1년이 되어가고, 6개월이 넘는 이별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들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야하는지 여러 번 되물었지만, 이미 나는 가고 있었고... 가지 않고는 다시 돌아올 자신이 없었다. 이런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을텐데... 서로가 만들어 온 그 시간의 힘으로 다시 오늘을 만들 수 있음이 또한 감사하다.

 

품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품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것저것 애는 써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전하는 헌사다.

 

“품 사람들에게 전하는 헌사”

 

심한기. 그는 내가 만난 가장 뜨거운 사람이다. 간혹 그 뜨거움에 주눅 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나는 그를 통해 온몸을 부딪쳐 제 삶을 사랑하는 열정을 배웠다. 돌직구 성격이 닮아서인가, 많이 부딪치긴 했어도, 고된 역사에 단련된 오랜 관성과 싸워가며 늘 변화하고 도전하는 그를 나는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그가 꿈꾸는 대로 네팔의 사원에서 경전을 읽으며, 삶을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아름다운 순간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너무 멀진 않기를 기도한다.

 

강명숙.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큰 가슴이다. 그녀는 나와 달라서, 가끔 좀 무관심해보이고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만한 내가 가장 작아지는 순간, 대책 없이 흔들리고 추락하던 격정의 순간마다,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준 선배이다. 쉽지 않은 역할을 남기고 떠나는 미안함은 어쩔 수 없지만, 일상까지 보듬기 시작한 너른 가슴으로 잘 품어 내리라 믿는다.

 

이상섭. 그는 내가 만난 가장 이상한 사람이다. 이유도 능력도 재지 않고 그냥 자신을 내맡기는 그는 그냥... 품이다. 순정마초, 춤추는 쿵푸팬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그 귀여운 춤사위를 더 이상 못보는 게 몹시 아쉽지만, 그래도 섭이 있어 참 든든하다. 섭의 길을 응원하며.. 느리지만 묵직한 자신의 걸음을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이가령.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큰 머리이다. 실제로 머리가 크기도 하지만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생각한 것을 삶으로 실천할 줄 아는 그녀이기에 더욱 멋있다. 담기 어려운 후배였지만 담고 나니 가장 짠한 후배이기도 하다. 비명에 가까운 그녀의 웃음소리가 자주 들려왔으면 좋겠다. 그녀의 품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안하나.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시골집 같은 사람이다. 시골집 같은 정서로 품 살이가 쉽지 않았을터인데.. 포기하지 않는 그녀는 역시 뚝배기 같다. 너무 어렵게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 선한 웃음에 똑 어울리는 자리에서, 느릿느릿 자신을 만나봤으면 한다.

 

이지성.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멋진 활동가로 막 꽃을 피우려던 찰라, 예고 없이 찾아 온 병이 참 미웠지만, 변함없이 그녀는 깊고, 사랑스럽다. 그녀가 튼튼한 가슴을 달고 히말라야에 오를 날을 기다린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하니.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수도자 같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질문, 쉼 없는 성찰 속에 끝내 자신을 만나고야 마는 그녀의 과정은 늘 나를 반추하게 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상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품과 품의 사람들을 품고자 했던 그녀의 깊은 가슴을 사랑한다. 미처 나누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 오래도록 만나며 풀어갈 수 있기를. 고맙다, 이하니!

 

이명화.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고약한 술버릇이다. 취중에 펼쳐지는 그녀의 극적인 몸짓에는 밝은 얼굴 속에 숨겨진 삶의 아픔들이 묻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주사가 좋다. 조금씩 더 자신을 사랑하며 부지런히 삶을 꾸려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좋다. 나는 그녀가 술을 더 더 많이 마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점차 술 마시지 않고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녀는 지금 충분히 아름답다. 베시에서 만날 그녀가 기대된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녀들.. 미경, 정주, 윤희, 미루... 다 부르지도 못할 만큼 많은 그 이름들이 오래도록 그리울 것이다.

 

품은 내 인생의 ‘가장’ 이다. 이곳에서 나는 가장 힘들었고, 가장 치열했으며, 가장 사랑했었다.

나를 이곳에 있게 해준 품과 ‘가장’ 사람들에게 가슴 깊은 감사를 전하며...

품이 앞으로 만들어 갈 삶이 가장 평화롭고 가장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품에서의 처음처럼, 지금 나는 막연하다.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부름을 따라 나는 가기로 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지금, 무엇도 확신하기 어렵다. 다만 내가 믿는 것은, 품에서의 10년, 적어도 도망치진 않았던 나와, 그 안에서 함께 만들어 온 기적 같은 시간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삼일 후면 네팔에 갈 것이고, 거기서 매일 찌아를 마시며 타멜 거리를 두리번거리겠지. 허그하우스 공사가 시작되면 밥이나 나르고 땅이나 파면서 가끔 잔소리도 좀 해야 할 것이고... 꼭 한번은 홀로 긴 여행도 해 볼 생각이다. 아, 그리고 그 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벌써 나와 결혼을 해버린 그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지속될지도 고민해봐야겠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질적인 삶의 방식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다. 이것은 삶의 경계에서 두리번거리기를 시작한 나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활동가이면서 생활인으로 살기,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살기, 마을 속에 개인으로, 개인 안에 마을을 품고 살기, 도시 속에서 자연적으로, 혹은 자연 속에서도 동시대와 소통하며 살기를, 아티스트 월샘의 말을 빌자면 나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 어느 지점에서 품과 나는,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금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이 그렇게 서운하진 않다.


무엇이 되든, 혹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라도 오랜 품의 식구로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모두 건강하게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고맙습니다.

 

_2013년 8월 25일 새벽, 우이동 품 사무실에서, 유현희 드림



사진으로 전하는 "현의 졸업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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