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활동] 충남대학교에서 청년을 만나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1-07-28
조회수 81


글쓴이. 이준화 20141202



12월 첫날부터 매서운 추위와 함께 시작합니다.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지난 11월 20일, 충남대학교로 심한기 선생님과 우이동 청년들이 찾아와주셨습니다.

두근거렸던 그때의 기록을 전하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_^

고맙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못찍었던게 아쉽습니다...)


지난 2012년, 한남대학교에서 심한기 선생님의 강연을 처음 들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 누군가 "총 맞은 것 같다"는 소감을 들려주었는데, 그때 저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심한기 선생님을 만났고, 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만났던 강연의 떨림은 이후 '청년학교'와 '오~ 히말라야'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를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대학생활을 하며 느꼈던 '떨림'을 다른 학우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심한기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위와 같은 뜻을 밝히고 강연을 부탁드리니, 선생님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란다." 는 선생님의 말씀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11월 20일, 충남대학교로 심한기 선생님과 품의 청년들이 찾아와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거창, 전주, 김해, 공주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심한기 선생님의 강연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심한기 선생님께서 몇몇 학생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셨고, 다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같은 질문을 다시 들으니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멈춰있기보다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살아가는동안 계속 던져보아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비록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사회복지란 무엇일까?"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돕는다' 라는 말을 빼놓고 생각했던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아름답게 지속가능하려면 판단과 생각을 흔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 복지는 돕기만 해야할지? 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사회복지란 무엇일까?'

익숙하게 생각하던 질문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남이 정립했던 이야기를 말하려니 어렵다. 그러지말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야 한다." 는 심한기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막지 않는가?"익숙함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볼 필요를 느낍니다.
어쩌면 자유로운 사유의 시작은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아요.' 라고 말하기 보다 '이만큼 알아요.' 라는 말이 필요할 때 입니다.



선생님께선 얼마전에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강연에 참여하는 청년들과 나누고 싶었다며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연기와 중도라는 단어가 칠판에 쓰여졌고, 선생님께서 연기사상과 중도사상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고, 

연기 / 중도 / 복지 / 자존을 어떻게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을지 사유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사유는 운동이고, 연결이고, 시도이며, 이런 것이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고 하십니다. 

끊임없이(지속적으로, 운동) 생각하고(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연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도전, 시도)은 삶을 가꾸어 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유라는 단어가 꽤나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지속가능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속가능함은 행복함과 비슷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돕기만 하면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연인을 예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랑을 주기만 하거나 혹은 사랑을 받기만 하면 과연 행복할지?



사회복지가 돕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NGO의 활동처럼 돕는 사람은 돕고, 받는 사람들은 받기만 한다면... 지구는 돕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쪼개진다"

돕는다는 단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언젠가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사유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국제구호에 관심있는 청년들은 개발이라는 단어를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개발과 복지의 연관성을 역사적 흐름에 맞추어 써보

자"는 질문을 던져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개발은 타동사의 개념이고, 개발은 개발을 만든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개발을 하여 땅값이 올라갔다면? 이는 환각이 되어 다른 지역에서는 개발을 안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이는 또 다른 개발을 불러드린다고 합니다.



반면 발전은 자동사의 개념이고, 내발적 변화라고 합니다.


심한기 선생님께서 개발의 역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14c ~ 20c 는 개발과 신민지배 프로젝트,

1945 ~ 1970 는 개발 프로젝트,

1970 ~ 2000 는 지구화 프로젝트.

이름을 달리할 뿐 개발은 지배와 불평등의 역사와 함께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개발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의 발전이란 대안이 주목받고 있고, 이런 것을 내 삶으로 녹여내기 위해서는 

땀나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개발을 이야기하니 강연은 예정되었던 시간을 어느덧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때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지속가능함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연, 시도, 사유, 지속가능함, 중도, 연기...

이 글을 쓰며 많은 단어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아직 생각을 온전히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심한기 선생님과 여러 청년들과의 만남 그 자체로 삶을 흔들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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