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세상 속 작은 톱니바퀴, 나
- 마을배움터 청년인턴 이한
'연말'이라는 것을 확 확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열린대학도 벌써 6번째 날이라니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열린대학 안에서 그동안 나는 어떤 것들을 얻었으며, 시작하기 전에는 뭘 원했었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열린대학 6번째 날을 맞았다.
오늘은 휘의 세상읽기 강의가 있었다.
나에게는 세상을 읽는다는 것이 아주 어렵고 거창하게 느껴져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엄청 기대가 됐다. 민들레에 다니면서 1학기 때 시민학 수업을 휘가 맡아주셨는데
그 수업이 재밌었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 뒤, 이어지는 첫 메시지가 아주 강렬했다.
세상을 읽고 나의 역사를 쓰세요!
세상을 읽는 관점으로는 사르트르와 조선을 사례로 설명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사르트르와 조선의 등장에 약간 주춤했다.
사르트르는 그의 사상이 재밌어서 여러 책을 읽어보았고, 조선에 대해서는 학교를 다니며 수도없이 배워왔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사상으로 세상을 읽어보는 것은 또 새로운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휘가 설명하는 세상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스며들듯이 납득이 되었고,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역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지금과 옛날, 나와 세계도 전부 다 연결되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고 있고,
나도 이 세계의 아주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인 거구나... 나의 역사와 동떨어진 세계의 역사는 없고...'
처음엔 이렇게 내가 들은 이야기, 사실들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세상을 살펴보는 과정 속에서는 뭐가 맞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이해하기 어렵고, 내 감각을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잘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가도 문득 '그래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맛보기였던 것 같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잘하게 되겠지 싶다.
또 하나 강렬하게 들어온 것이 있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굉장히 일관하게, 편협하게 나라는 사람을 구축해왔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취하는 관점으로 인해 스스로가 어떤 프레임에 갇혔을 가능성, 내가 나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건 백 퍼센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무엇인지 헷갈렸던 과거의 여러 경험들이 떠올랐다.
내가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미묘한 이질감? 그 둘이 하나로 일치되지 않을 때 나는 불편해진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 때 느끼는 혼란은 곧 정체성에도 영향이 간다.
그래서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내가 다를 때 어느쪽이 더 '진짜 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이 훈련은 평생동안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을 의지하며 지내는 친구가 어느날 나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규정하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게 나지."
잊을만 하면 다시금 떠오르는 말이다.
오늘의 강의도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세상이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그 틈에 끼어있다는 것을 일깨워줄 것이다.
거대한 세상 속 작은 톱니바퀴, 나
- 마을배움터 청년인턴 이한
'연말'이라는 것을 확 확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열린대학도 벌써 6번째 날이라니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열린대학 안에서 그동안 나는 어떤 것들을 얻었으며, 시작하기 전에는 뭘 원했었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열린대학 6번째 날을 맞았다.
오늘은 휘의 세상읽기 강의가 있었다.
나에게는 세상을 읽는다는 것이 아주 어렵고 거창하게 느껴져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엄청 기대가 됐다. 민들레에 다니면서 1학기 때 시민학 수업을 휘가 맡아주셨는데
그 수업이 재밌었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 뒤, 이어지는 첫 메시지가 아주 강렬했다.
세상을 읽고 나의 역사를 쓰세요!
세상을 읽는 관점으로는 사르트르와 조선을 사례로 설명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사르트르와 조선의 등장에 약간 주춤했다.
사르트르는 그의 사상이 재밌어서 여러 책을 읽어보았고, 조선에 대해서는 학교를 다니며 수도없이 배워왔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사상으로 세상을 읽어보는 것은 또 새로운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휘가 설명하는 세상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스며들듯이 납득이 되었고,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역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지금과 옛날, 나와 세계도 전부 다 연결되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고 있고,
나도 이 세계의 아주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인 거구나... 나의 역사와 동떨어진 세계의 역사는 없고...'
처음엔 이렇게 내가 들은 이야기, 사실들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세상을 살펴보는 과정 속에서는 뭐가 맞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이해하기 어렵고, 내 감각을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잘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가도 문득 '그래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맛보기였던 것 같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잘하게 되겠지 싶다.
또 하나 강렬하게 들어온 것이 있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굉장히 일관하게, 편협하게 나라는 사람을 구축해왔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취하는 관점으로 인해 스스로가 어떤 프레임에 갇혔을 가능성, 내가 나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건 백 퍼센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무엇인지 헷갈렸던 과거의 여러 경험들이 떠올랐다.
내가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미묘한 이질감? 그 둘이 하나로 일치되지 않을 때 나는 불편해진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 때 느끼는 혼란은 곧 정체성에도 영향이 간다.
그래서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내가 다를 때 어느쪽이 더 '진짜 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이 훈련은 평생동안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을 의지하며 지내는 친구가 어느날 나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규정하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게 나지."
잊을만 하면 다시금 떠오르는 말이다.
오늘의 강의도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세상이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그 틈에 끼어있다는 것을 일깨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