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배움터 찾아오지 못한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하교 후에 찾아오는 아이들 덕에 오후 4시부터 책상에 못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2달간 책상 앞에 꼭 붙어 앉아있는 중이다. 적막하게 타자 소리만 나는 사무실이 난 영 이상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카톡이 온다. 1주~2주 정도는 아이들이 오히려 생각지 못한 개학연기에 신나 보였다. 학교 안 가서 너무 좋고, 학원도 안 가서 너무 좋고, 늦잠 잘 수 있어서 너무 좋고...
하지만 예상보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다.
“답답한데 학원 숙제는 그대로에요...”
“쌤, 저희 동아리 활동하려는데 학교도 못 가고 공간을 빌리기엔 돈도 없어요.ㅜㅜㅜ”
“심심해요 쌤, 배움터 놀러가고 싶어요.”
“몸은 편한데 계속 누워만 있으니까 불안해요..”
아이들과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은 쉼을 즐기지 못 하는구나.’
#. 충만한 삶을 위한 쉼
코로나 19가 일상을 바꿔놓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과로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서 아이들의 쉼을 이야기하기 보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을 배우지 못하는 ‘교육’을 비판이 아닌 ‘지금’의 아이들 일상을 살피고 싶다.
아이들에겐 코로나19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 학교를 안 갈 수 있는 전염병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늦게까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잘 수도 있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며 몇 시간씩 보내기도 한다. 게임을 맘껏 할 수도 있고,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 ‘시간’이 1주, 2주 늘어날수록 아이들 맘속엔 불안함이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을 ‘시간낭비’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왜 아이들은 ‘무목적’ 활동을 시간낭비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해야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을까.
왜 스스로 만드는 여백에 대해 불편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배워왔다.
성장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숨’을 돌리는지 배운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생기거나 여유가 생기면 TV를 키고, SNS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멍하니 그 시간을 보내게 될 뿐이다. 이러한 일시적 즐거움은 금세 지치게 하고 정신 상태를 침체시키기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우린 쉼을 일시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진 않을까.
다시 말하면 지금-여기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19를 마주한 아이들과 재난은 내일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배움의 시간을 만들어야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지금’에 존재하는 감각을 일상적으로 함께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길 희망해본다.
#. 합을 맞추며 함께 과정을 쌓아가는 중
올해 마을배움터 새식구가 된 상현과 낭만공유지 청년활동가로 함께하는 규민 그리고 청소년 마을배움 사업 담당자 민정은 개학이 늦어짐에 따라 청소년마을배움 사업은 촘촘히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을 못 만나고 있는 아쉬움을 삼키며 더 잘 만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전환했다.
세명이 쓰는 언어와 의미가 너무나도 다름을 확인하고, 그 다름을 함께 맞춰가는 작업을 한 달간 했다. 규민과 상현은 자신이 해보려는 사업의 개념도만 10개를 넘게 그려냈다. 밤새 고민을 하기도 하고, 전체 식구들 함께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만약 한 달이 넘는 이 시간이 없었다면, 이제 시작하는 상현과 규민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수도 있고 혹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 것이 오래 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현, 규민, 민정 모두 눈빛이 살아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 각자만의 그리고 우리들만의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가 상현과 규민이 그린 사업 개념도
#. 2020년 봄
지난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닥칠 미래에 재난은 계속 되고 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내가 딛고 있는 현재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생각해본다. 불안과 우울을 넘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이곳에 있음을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함께’가 되어보려 한다. 내가 여기 있고, 너가 여기 있다고 서로에게 말해주며 천천히 살아가야겠다.
글쓴이 : 활동가 고민정
아이들이 배움터 찾아오지 못한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하교 후에 찾아오는 아이들 덕에 오후 4시부터 책상에 못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2달간 책상 앞에 꼭 붙어 앉아있는 중이다. 적막하게 타자 소리만 나는 사무실이 난 영 이상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카톡이 온다. 1주~2주 정도는 아이들이 오히려 생각지 못한 개학연기에 신나 보였다. 학교 안 가서 너무 좋고, 학원도 안 가서 너무 좋고, 늦잠 잘 수 있어서 너무 좋고...
하지만 예상보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다.
“답답한데 학원 숙제는 그대로에요...”
“쌤, 저희 동아리 활동하려는데 학교도 못 가고 공간을 빌리기엔 돈도 없어요.ㅜㅜㅜ”
“심심해요 쌤, 배움터 놀러가고 싶어요.”
“몸은 편한데 계속 누워만 있으니까 불안해요..”
아이들과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은 쉼을 즐기지 못 하는구나.’
#. 충만한 삶을 위한 쉼
코로나 19가 일상을 바꿔놓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과로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서 아이들의 쉼을 이야기하기 보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을 배우지 못하는 ‘교육’을 비판이 아닌 ‘지금’의 아이들 일상을 살피고 싶다.
아이들에겐 코로나19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 학교를 안 갈 수 있는 전염병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늦게까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잘 수도 있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며 몇 시간씩 보내기도 한다. 게임을 맘껏 할 수도 있고,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 ‘시간’이 1주, 2주 늘어날수록 아이들 맘속엔 불안함이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을 ‘시간낭비’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왜 아이들은 ‘무목적’ 활동을 시간낭비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해야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을까.
왜 스스로 만드는 여백에 대해 불편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배워왔다.
성장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숨’을 돌리는지 배운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생기거나 여유가 생기면 TV를 키고, SNS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멍하니 그 시간을 보내게 될 뿐이다. 이러한 일시적 즐거움은 금세 지치게 하고 정신 상태를 침체시키기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우린 쉼을 일시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진 않을까.
다시 말하면 지금-여기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19를 마주한 아이들과 재난은 내일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배움의 시간을 만들어야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지금’에 존재하는 감각을 일상적으로 함께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길 희망해본다.
#. 합을 맞추며 함께 과정을 쌓아가는 중
올해 마을배움터 새식구가 된 상현과 낭만공유지 청년활동가로 함께하는 규민 그리고 청소년 마을배움 사업 담당자 민정은 개학이 늦어짐에 따라 청소년마을배움 사업은 촘촘히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을 못 만나고 있는 아쉬움을 삼키며 더 잘 만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전환했다.
세명이 쓰는 언어와 의미가 너무나도 다름을 확인하고, 그 다름을 함께 맞춰가는 작업을 한 달간 했다. 규민과 상현은 자신이 해보려는 사업의 개념도만 10개를 넘게 그려냈다. 밤새 고민을 하기도 하고, 전체 식구들 함께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만약 한 달이 넘는 이 시간이 없었다면, 이제 시작하는 상현과 규민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수도 있고 혹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 것이 오래 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현, 규민, 민정 모두 눈빛이 살아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 각자만의 그리고 우리들만의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가 상현과 규민이 그린 사업 개념도
#. 2020년 봄
지난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닥칠 미래에 재난은 계속 되고 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내가 딛고 있는 현재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생각해본다. 불안과 우울을 넘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이곳에 있음을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함께’가 되어보려 한다. 내가 여기 있고, 너가 여기 있다고 서로에게 말해주며 천천히 살아가야겠다.
글쓴이 : 활동가 고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