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성장과 연대[열린대학 리뷰-안연빈] 자기 삶의 연구자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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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대학(LOC) 세 번째 날 “자기 삶의 연구자” 


- 안연빈


새로운 공간으로


오늘은 나들이 날이었어요.

마을배움터 숨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모였어요.

‘공간 민들레와 ‘문화디자인자리’ 두 공간 중 하나를 택해서 갔어요.

저는 공간 민들레에 방문했습니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가치로 삼는 공간 민들레.

공간 민들레를 잠깐 소개해드릴게요.



이십여 년 전, 출판사 한 켠 소파에 앉아 어른들 뒷모습을 보며 배우고 자란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탈학교생’이라 부르던 이들이 어느새 스무 명, 서른 명으로 늘어나 출판사 공간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져 이들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름하여 '민들레사랑방', 공간민들레의 전신입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뒤 사랑방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머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늘어났습니다. 본격적인 학습과 경험의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사랑방에 안방까지 갖춘 작은 커뮤니티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이름을 ‘공간민들레’라 붙였습니다. 굳이 대안학교가 아니라 ‘공간’이라 부르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꽉 짜인 시간표가 있고, 담당 교사가 있는 학교 형식을 띠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런 필요에 의해 기획된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있고, 아이나 어른들은 이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필요하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소모임을 제안해 주체적인 배움과 성장을 도모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출처: 공간 민들레 홈페이지 소개글



출판사로 시작한 민들레는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의 교육 공간입니다.

출판사 또한 여전히 있고, 정기적으로 책이 나오고 있답니다.

책 선물 받았어요.

책 선물은 늘 기분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언젠가 우리 동료들과 한 꼭지씩 읽고 생각 나누면 재밌을 것 같아요:)


편안한 느낌의 공간이었어요.

20년이 넘은 테이블과 조그마한 다락 공간이 주는 느낌이 따뜻해요.

책도 참 많았어요.

책 읽는 건 안 좋아할 수 있어도, 책이 있는 풍경은 모두가 좋아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웃었더랍니다.




공간민들레 대표 김경옥 선생님의 이야기


이번 대화 주제는 '내 삶의 연구자'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자기 삶의 연구자'라는 시로 모임을 열었습니다.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 내는 것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 내는 것


-자기 삶의 연구자 中-



'무심코 살면 편하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 자신을 연구해야 하는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같이 공감했어요.


먼저 김경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경옥 선생님 말씀에서는 생각할 거리와 영감을 가득 얻을 수 있어요.

어떻게 나를 탐구하고, 세상을 이해하면 좋은지 말씀하셨어요.






1.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다.

나를 내 맘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연구가 필요하다.


10대까지는 다양한 것을 학습한다.

20대에는 자기 진단.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 후 자기 연구를 한다.

30대 넘어서 부터는 이런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한다.




2.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진리가 또 하나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

나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집단, 사회, 세상을 알아야 한다.



한 선생님께서 질투가 많은 자신의 모습으로 속상하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김경옥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안 그런 사람 없을 걸요."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요.




3. 자기 탐구의 핵심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경직된 정의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기.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가 아닌 

'나는 어떨 때 질투가 생기고 안 생기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탐구이다.




4.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이해하기.

꼭 우주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아주 가까운 내가 속한 조직, 구조(직장 등)를 이해해본다.

이해한다는 건 깊게 파고 들어서 그 진상을 알아내는 것.

'왜 그런거지?' 찾아내는 것.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이해 후 전술과 작전 짜기가 필요하다.

이해한 후에도 용납이 안 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조직과 헤어지는 게 맞다.

어떤 세계를 살지 선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린대학에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진 몇개를 보여주셨어요.

지하철 노선도요.



지하철 노선도(1)

영국 지하철이 생기고 처음 만들어진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주셨어요.

지상의 지형까지 반영한 지도였어요.

지하철 노선과 지상의 지형까지 같이 그려져 있어 복잡했어요.

사람들은 지도를 보기 불편해 했어요.

그 고충을 알았던 한 사람이 새로운 노선도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익히 떠올릴 수 있는 선들로만 이루어진 노선도입니다.

그 사람은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라  지하철 전기 배공하던 사람이었어요.

자신이 늘 봐오던 지하철 내 전선의 시선으로 이런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거지요.







지하철 노선도(2)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노선도를 보면 호선마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분이 편한 그 노선도가

색약자에게는 노선의 색이 비슷하게 보여서 구분이 어려웠답니다.

디자인 공부를 하던 대학생이 그런 색약자 친구의 고민을 듣고, 색약자도 보기 편한 노선도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연구는 엄청난 능력과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닙니다. 진심이 있고, 어떤 일에 절실히 동하는 마음이 중요하죠."


'어디에 시선을 둘지, 무엇에 진심인지'가 연구의 핵심 같아요.


우리도 대단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지하철 노선도를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 두 사람처럼요.

저도 제가 가진 작은 능력으로 소소하지만 위대한 변화를 일으키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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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기 연구 이야기

오늘의 질문은 '자기 진단 (자기 탐구, 자기 연구)를 요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입니다.

김경옥 선생님께서 저에게 질문 주셨어요.

"자기 진단요..."

방대하게 느껴져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잘 몰랐어요.

그런 제 마음 아셨는지 한 번 더 물으셨습니다.

"휴학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질문을 받으니 제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었어요.

왜 휴학 했고, 휴학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학교 생활을 못 버티겠어서 휴학을 했어요.

청소년 때부터 청소년 상담사를 오래 꿈꿔 왔어요.

또래 친구들에 비해 하고 싶은 일, 진로가 확고했지요.

그래서 과제나 시험 같은 학교 생활도 늘 성실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이 흐려지기 시작했어요.

목표가 흐려지니 열심히 하기 힘들어졌어요.

"아. 하기 싫어" 하면서 꾸역꾸역 해나가는 시간들이 아까웠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어요.

청소년 만나는 봉사활동 하면서도 권태감, 죄책감 같은 걸 느꼈어요.


3년이나 같은 곳에서 같은 아이들을 만났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아이들이랑 있는 게 재미없다. 집 가고 싶다.'

그저 미안하기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하고, 회의감만 가득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후회만 가득해서 울컥한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어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 같아요.

상담 심리와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을 돕는 일'이지요.

제 시선은 '이 사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뿐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시선이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 시선이 만나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대상화하고 문제 있는 사람, 도움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보게 했어요.

온통 아이의 문제만이 중요했어요.

또 그 아이가 문제가 있어야만, 내가 그걸 해결해주어야만 나의 존재 가치가 생기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제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답니다.


그러다 2021년 여름 방학 때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게 됐어요.

그리곤, 잊지 못할 뜨거운 여름이 되었답니다.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실습하며 '복지요결'이라는 이론서를 공부했어요.

어떤 문장은 마음에 훅 들어왔고,

어떤 문장에서는 말 없이 오래 머물기도 했습니다.


'사람다움과 사회다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람답게 돕고, 사회를 사람사는 사회 같게 만들 수 있을지.'

'생태 관점과 강점 관점.'

'사람을 구차하고 무능하게 만드는 여러 복지 관례들'

등을 공부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관점이 생겼어요.


이렇게 공부하고 아이들 만나니 그 어느때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했어요. 아이들 만날 때 신나고 기뻤어요.

나도 행복하고, 아이들도 행복하고요.


실습이 끝나고 다음 학기부터 바로 휴학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게 마땅하다 크게 느꼈는데, 그만큼의 지식이나 논리가 없으니

학교로 돌아가면 또 다시 흔들릴까 두려웠습니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 동료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대상화하는 시선과, 강점을 경축하는 시선.

문제가 있어야 가치가 생기는 사회복지와,

강점과 희망으로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회복지…”


맞아요. 그 차이가 아주 커요.


지금 일 년 반 째 휴학 중인데, 현재 생활이 참 좋고 만족스러워요.

휴학하고 두 번의 실습을 더 했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용돈을 야금야금 벌고,

사회복지 공부 모임에 참여하며 여러 글을 읽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이런 저런 주제로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열린대학에 참여하고,

좋은 기관들 방문하면서 현장을 느껴보기도 하면서요.


"전능감에 빠지지 않는 것. 참 중요해요."

"이 이야기를 잘 기록해두었다가 대학에 돌아가서 학우들과 꼭 나누면 좋겠어요."

"지금 경험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거예요."

"선생님 이야기에 많이 공감 됐어요."


많은 선생님들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시고 지지 응원 해주셨어요.

제 이야기를 반가워해주시고, 글로 남겨달라 부탁도 받아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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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유쾌하신 사장님이 계신 식당으로 저녁 먹으러 갔어요.

메뉴도 고를새 없이 사장님 알아서(?) 준비해주셨답니다ㅋㅋ


열린대학하는 날. 수요일 저녁은 늘 진수성찬입니다.

편안하고 흥미로운 대화와 함께하는 수요일 저녁이 참 즐겁습니다.

제 나이 또래가 아닌 사람, 20대를 넘어 분들과 만나서 소통할 기회는 거의 없었어요.

제 세상이 열리는 기분입니다.


민들레에서 책을 펴내시는 헌병호 선생님, 장희숙 선생님과 저녁 함께 했어요.

헌병호 선생님께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겼던 민들레의 혁명적인 교육 운동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일을 하시면서 한 편으로 들었던 후회도 말씀하셨지요.

그렇지만 그 자리에 많은 선생님들은 학교 밖 교육의 선택지를 만들어주시고 넓혀주신 것에 감사함을 표현하셨답니다.


이 자리에는

자녀가 고등학교 가기 전 갭 이어 시간을 주고 싶다는 선생님.

중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선생님.

또 그런 자녀를 둔 선생님도 계세요.


청소년의 길이 다양하게 열릴 수 있도록 바람을 불어 넣어 준 민들레.

고맙습니다.


자연스레 학교 밖 청소년의 안전망 이야기로 이어지고,

서로의 존재가 안심과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노래 '아침이슬'을 모른다며 신기해 하시기도 하면서.. (저도 몰라요ㅎㅎ)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세대를 넘나드는 모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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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대학 세 번째 날이었어요.

저는 처음을 낯설어하고, 사람과 관계 맺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특히 연상인 사람과는 더더욱 그래요.

나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버릇이 있어서 인지..


그런 저도 어느새 열린대학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고 있더랍니다.

나잇대도 다양하고, 사는 곳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

열린대학 아니었더라면 만날 일이 없었을 인연.

새롭고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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