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한기 대표님의 전체 이력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이 대다수였는데요. 특별히 세대들 가운데 청소년, 10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 록밴드활동을 하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부모, 교사, 친구, 동네사람들, 세상)은 우리를 비웃거나 인정하지 않았음. 대학공부를 해야 할 고3 수험생이 미친 짓을 한다고....그 때 나는 의문이 들었음. 왜 나쁜일도 아닌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을 막고 있는가? 그래서 나의 후배(이 땅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이 품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됨.
2. (경험의 쫀득함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겼습니다.) 저는 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나왔습니다. 대안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남들과는 조금 달라야한다는 생각과 주변의 그런 시선에 대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졸업생들에게 한 말씀만 해 주시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다르다. 다른데 같아지려고 하거나, 다른데 같은 색깔로 묶어내려는 것이 문제이다. 의식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생각 역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온전한 SELF-SO의 삶이다. 대안학교를 졸업했건 일반학교를 나왔건 아니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건 타인의 시선과 자신이 만들어낸 부자유스러운 생각과 태도를 벗어내자. 그리고 개인의 색은 모두 다르지만 삶의 지향점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경우도 많다. 살아가면 그런 동지들을 만나는 일도 행복한 일며 전혀 다른 지향점을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 또한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삶인 것이다. 부담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부터 시작한다. 스스로 당당하면 되지 않을까?
3. 저희는 인문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과목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변화, 윤리학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심한기 대표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책을 내셨는데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인문학’이란 무엇 입니까?
인문학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은 인간과 우주의 삶을 사유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생각을 한다는 것, 생각한 것을 실천한다는 것, 생각을 하며 꿈을 꾸고 현실을 바꿔본다는 것..이런 것들에 대한 공부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매우 당연한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문학은 당연한 공부라기보다는 지식의 교양을 만들기 위한 화장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10대, 20대, 50대, 70대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인문 공부를 죽는 날까지 즐겁게 해봐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청소년을 가르치면서 서운하고 속상했던 일이나 기뻤던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행복한 일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가치로운 실천을 멈추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모습을 만나는 것.
가장 슬픈 일은 당당해야 할 청년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꿈을 좁혀가거나 경제적 가치등에 매몰되는 모습을 만날 때.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꾸려하지 않는 청년을 만날 때. 마지막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며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함.
[ 품이 바라보고, 행동하고, 희망하는 일상들은 꽤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품을 만나는 많은 십대의 아이들은 혼란을 겪거나 기존의 일상이나 질서에 대한 의심을 한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길을 가지 말라고 부추기기도 하기에 때론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 수능시험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일상과 미래를 기획하는 일에 몰입하라고 제안하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고 도전하고 선택해보라고 꼬드기기도 한다. 그래서 품은 학교와 부모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의 부모에게 멱살을 잡혀보기도 했고, ‘아이들을 좀 믿고 기다려 보셔요!’라며 핏대를 세우며 부모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만나는 일은 품과 부모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러한 어려움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참 다행인 것은.
학원을 빼먹고 동네문화작업을 하고, 시험성적이 떨어질 만큼 다른 것에 몰입했던 십대의 아이들이 이십대의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회심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그리도 걱정했던 낙오자의 모습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당당한 청년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더욱 즐거운 일은 함께 성장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부모를 이해하려 하고, 지지하려 하고, 또 다른 동생들을 응원하고 다독이는 모습을 만나는 일이다. 김판중, 이설, 김동혁, 김준혁, 서인석, 송성호가 바로 그런 청년들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 녀석들만이 아닌 더 많은 청년들이 품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히말라야 네팔에서도 역시 또 다른 3,3,3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20년이란 긴 시간의 노력들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며, 가끔씩 부딪치는 고난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 품20년 사 중....]
*심한기 님의 20대와 오늘 날의 20대와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시간의 흐름이 가지는 당연한 차이들이 있다. 통신과 문명의 발달 같은 당연한 차이들... 이런 차이들에 대한 설명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한가지... 나의 20대에는 그래도 거짓과 오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변화를 위한 실천이 지금의 20대 보다는 더 활발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은 생존에 몰입하고 있다. 생존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우리시대 청년들의 분노와 실천이 소중하다. 사회가 원하는 수단적 목표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자기 존재감이 연결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청년들...불가능한 꿈을 꾸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한 품이 존재하고 나의 삶이 존재하는 것 같다.
1) 여기서의 ‘비현실성’은 기존의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비현실성을 의미한다. 품에게 비현실성은 곧 현실성이다. 비현실성의 현실성은 품이 버리지 못하는 유쾌한 반항이며 신나는 에너지이다.
5. 심한기 대표님의 맡으신 일의 곡선이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위기, 그리고 극복의 과정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가 좀 어렵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위기를 위기하고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극적인 장면들은 없었다. 소신대로 살아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손으로 잡히는 변화와 성장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6. 삶에 좌우명 같은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좌우명과 같이 정해놓고 따르는 것들은 특별히 없다.
단 ‘청년답게 살자’라는 내 삶의 외침은 늘 변함없다.
그대가 이 땅의 청년이기를....
청년은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 방황한다.
청년은 종속과 해방 사이에서 좌절한다.
청년은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고뇌한다. 결국…
방황과 좌절과 고뇌는 도전과 창조의 세대로 거듭나는 산고임을..
새로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청년은 ‘이중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청년은 익숙한 기성의 질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청년이라면…
거기에 희망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고, 경제를 읽고, 문화를 읽고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삶과 일상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리지 않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말하지 않으면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삶을
서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채우려만 하지 말고, 담아 낼 수 있는
'마음과 가슴과 영혼의 언어'가 필요하다.
소중하게, 나눠주며, 뜨거운 청년의 삶을 만들어 가자.
우리는 희망한다.
그대가 이 땅에 청년이기를
[ 나의 스승인 강대근 선생님의 습작 詩 중 ]
1. 심한기 대표님의 전체 이력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이 대다수였는데요. 특별히 세대들 가운데 청소년, 10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면?
고등학교 시절 록밴드활동을 하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부모, 교사, 친구, 동네사람들, 세상)은 우리를 비웃거나 인정하지 않았음. 대학공부를 해야 할 고3 수험생이 미친 짓을 한다고....그 때 나는 의문이 들었음. 왜 나쁜일도 아닌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을 막고 있는가? 그래서 나의 후배(이 땅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이 품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됨.
2. (경험의 쫀득함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겼습니다.) 저는 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나왔습니다. 대안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남들과는 조금 달라야한다는 생각과 주변의 그런 시선에 대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졸업생들에게 한 말씀만 해 주시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다르다. 다른데 같아지려고 하거나, 다른데 같은 색깔로 묶어내려는 것이 문제이다. 의식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생각 역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온전한 SELF-SO의 삶이다. 대안학교를 졸업했건 일반학교를 나왔건 아니면 학교를 다니지 않았건 타인의 시선과 자신이 만들어낸 부자유스러운 생각과 태도를 벗어내자. 그리고 개인의 색은 모두 다르지만 삶의 지향점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경우도 많다. 살아가면 그런 동지들을 만나는 일도 행복한 일며 전혀 다른 지향점을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 또한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삶인 것이다. 부담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부터 시작한다. 스스로 당당하면 되지 않을까?
3. 저희는 인문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과목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변화, 윤리학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심한기 대표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책을 내셨는데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인문학’이란 무엇 입니까?
인문학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은 인간과 우주의 삶을 사유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생각을 한다는 것, 생각한 것을 실천한다는 것, 생각을 하며 꿈을 꾸고 현실을 바꿔본다는 것..이런 것들에 대한 공부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매우 당연한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문학은 당연한 공부라기보다는 지식의 교양을 만들기 위한 화장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10대, 20대, 50대, 70대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인문 공부를 죽는 날까지 즐겁게 해봐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청소년을 가르치면서 서운하고 속상했던 일이나 기뻤던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행복한 일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가치로운 실천을 멈추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모습을 만나는 것.
가장 슬픈 일은 당당해야 할 청년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꿈을 좁혀가거나 경제적 가치등에 매몰되는 모습을 만날 때.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꾸려하지 않는 청년을 만날 때. 마지막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며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함.
[ 품이 바라보고, 행동하고, 희망하는 일상들은 꽤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품을 만나는 많은 십대의 아이들은 혼란을 겪거나 기존의 일상이나 질서에 대한 의심을 한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길을 가지 말라고 부추기기도 하기에 때론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 수능시험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일상과 미래를 기획하는 일에 몰입하라고 제안하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고 도전하고 선택해보라고 꼬드기기도 한다. 그래서 품은 학교와 부모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의 부모에게 멱살을 잡혀보기도 했고, ‘아이들을 좀 믿고 기다려 보셔요!’라며 핏대를 세우며 부모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만나는 일은 품과 부모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러한 어려움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참 다행인 것은.
학원을 빼먹고 동네문화작업을 하고, 시험성적이 떨어질 만큼 다른 것에 몰입했던 십대의 아이들이 이십대의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회심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그리도 걱정했던 낙오자의 모습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당당한 청년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더욱 즐거운 일은 함께 성장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부모를 이해하려 하고, 지지하려 하고, 또 다른 동생들을 응원하고 다독이는 모습을 만나는 일이다. 김판중, 이설, 김동혁, 김준혁, 서인석, 송성호가 바로 그런 청년들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 녀석들만이 아닌 더 많은 청년들이 품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히말라야 네팔에서도 역시 또 다른 3,3,3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20년이란 긴 시간의 노력들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며, 가끔씩 부딪치는 고난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 품20년 사 중....]
*심한기 님의 20대와 오늘 날의 20대와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시간의 흐름이 가지는 당연한 차이들이 있다. 통신과 문명의 발달 같은 당연한 차이들... 이런 차이들에 대한 설명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한가지... 나의 20대에는 그래도 거짓과 오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변화를 위한 실천이 지금의 20대 보다는 더 활발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은 생존에 몰입하고 있다. 생존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우리시대 청년들의 분노와 실천이 소중하다. 사회가 원하는 수단적 목표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자기 존재감이 연결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청년들...불가능한 꿈을 꾸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한 품이 존재하고 나의 삶이 존재하는 것 같다.
1) 여기서의 ‘비현실성’은 기존의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비현실성을 의미한다. 품에게 비현실성은 곧 현실성이다. 비현실성의 현실성은 품이 버리지 못하는 유쾌한 반항이며 신나는 에너지이다.
5. 심한기 대표님의 맡으신 일의 곡선이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위기, 그리고 극복의 과정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가 좀 어렵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위기를 위기하고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극적인 장면들은 없었다. 소신대로 살아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손으로 잡히는 변화와 성장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6. 삶에 좌우명 같은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좌우명과 같이 정해놓고 따르는 것들은 특별히 없다.
단 ‘청년답게 살자’라는 내 삶의 외침은 늘 변함없다.
그대가 이 땅의 청년이기를....
청년은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 방황한다.
청년은 종속과 해방 사이에서 좌절한다.
청년은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고뇌한다. 결국…
방황과 좌절과 고뇌는 도전과 창조의 세대로 거듭나는 산고임을..
새로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청년은 ‘이중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청년은 익숙한 기성의 질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청년이라면…
거기에 희망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고, 경제를 읽고, 문화를 읽고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삶과 일상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리지 않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말하지 않으면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삶을
서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채우려만 하지 말고, 담아 낼 수 있는
'마음과 가슴과 영혼의 언어'가 필요하다.
소중하게, 나눠주며, 뜨거운 청년의 삶을 만들어 가자.
우리는 희망한다.
그대가 이 땅에 청년이기를
[ 나의 스승인 강대근 선생님의 습작 詩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