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을말하다. 열하나] 품 20주년, 청소년과 마을만들기 _ 전효관

품 20주년 , 청소년과 마을만들기

 

1. 인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내겐 좀 특별한 인연이다. 사실은 자주 만나거나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강한 동지적 유대감을 느낀다. 서로 왕래가 많지 않아도 강한 느낌을 갖는 이유는 상호간에 형성된 신뢰가 있고, 공동의 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품과 하자센터는 많이 다르다. 품은 청소년 활동 경력이 하자센터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또 조직의 존재기반이나 활동방식도 많이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품과 하자센터는 기존의 청소년 활동 영역에서 좀더 혁신적인 흐름을 만들어가려는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품은 오래되었지만, 주어진 관성 내에 머물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독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품은 아주 각별하게 느껴진다. 내가 준비 없는 상태로 청소년 활동에 던져졌을 때, 품의 심한기 대표는 항상 하자센터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드문 사람이었다. 서울시의 시설로 시작한 하자센터와 민간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차이는 서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동지적 의존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 활동이 좀더 진화되어야 한다는 공유된 믿음 덕분 아닐까 생각해본다.

 


2. 품의 진화과정과 마을만들기 

품은 청소년 활동의 진화와 혁신의 흐름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이다. 청소년복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청소년 문화에 주목하고, 지역에서 청소년축제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를 마을만들기로 이어가는 품의 활동은 바로 진화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품은 바로 이 진화의 힘 때문에 당대적 문제와 호흡하면서 여전히 의미 있게 존재하고 있다.

 

거의 20년을 지하의 작은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단체가 부단한 진화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보다도 청소년 존재와 대상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양극화, 입시경쟁교육의 전면화 등 거의 재난상태에 이른 교육 현실은 청소년들에게 삶의 위기를 강제한다. 선한 의지, 좋은 경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품은 좀 다른 삶을 상상하고, 주민 스스로 지역의 환경을 재구성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어내는 ‘마을만들기’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떠올리기도 힘든 학교 폭력의 희생자들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삶을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청소년 활동의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재난상태에 대한 대증요법은 많지만, 사실 핵심적 질문과 새로운 모색의 움직임은 그리 많지는 않다. 품이 마을만들기에 주목한 것은 바로 청소년 활동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신의 활동을 구성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품은 지역과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품은 정책이나 제도와의 연결을 최소화하면서 지속해 온 매우 드문 단체이다. 품이 지역 근거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사실은 제도와 거리를 취하면서도 지속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이다. 바로 이웃에 만나고 도와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품은 활동을 지속해 올 수 있었다. 품의 지속성은 지역 활동과 분리되어 사고할 수 없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지역은 매우 취약하다. 커뮤니티는 파괴되었고, 시장질서가 모든 관계를 규제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품은 지역과의 관계를 시도하면서 자구적인 활동의 근거를 마련해 왔다. 동네와 말 걸기를 시도하고, 동네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동네를 위한 일을 기획하자고 지금도 제안하고 있다.

 


3. 청소년과 마을만들기

품의 활동 중에 지역 청소년축제 기획이 있다. 1998년 시작된 강북청소년문화축제는 벌써 14회에 이르렀다. 품은 청소년 축제를 시작하면서 청소년 참여의 문제를 고민했고, 2000년 청소년기획단이 탄생한다. 그 이후 선배와 후배의 관계망들이 만들어지면서 강북청소년문화축제는 지역의 대표적 청소년 참여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를 거듭하면서 일상성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이런 고민은 지역연대활동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된다. 2008년, 이런 고민은 일상의 놀이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가시화되고, 2010년에는 십대 대안문화공간을 열기에 이른다. 지하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청소년활동을 지지하는 동네의 힘을 모아 공간을 연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공간은 청소년과 동네가 만나는 공간을 상징한다.


품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에 대한 질문, 동네를 다시 읽고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한다. 이러한 일상과 주변에 대한 학습이 시작되면서 청소년축제 역시도 장르와 동아리 발표회 같은, 성격에서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 거듭난다. 축제와 동네가 일상성을 바탕으로 만나는 과정은 마을만들기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일 수 있다.

 

혹자의 지적처럼, 마을만들기는 너무 정답이어서 그 과정의 매개들이 잘 잡히진 않는다. 작은 움직임들, 작은 동기들을 주목하기보다는 하나의 모델을 복제하거나 그 요소들을 만들어가는 오류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년이라는 주변화 된 주체들의 삶에 주목하고, 이들의 삶을 동네와 이을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려낸다. 지역 청소년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마을만들기 과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하고 매개자로서 성장하는 가능성을 실증한다.

 

최근 '삼각산재미난마을공동체'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품의 경험은 이런 흐름들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품의 사례는 지역 내에서 작은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 작은 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동네를 실체화해 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품은 ‘십대와 행복한 마을만들기’를 이야기한다. 그 과정이 있기에 품이 말하는 행복한 마을만들기는 매우 구체적이다.

 


4. 품, 그 미래를 기대하며

요즘 교육과 사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폴라니의 말을 빌자면, ‘사회 속으로 들어오는 경제’가 없는 상태에서 대안을 꿈꾸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를 만들어갈 장은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사회에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사회를 위한 일을 하고 경험할 장이 없는 셈이다.

 

품도 여러 고민에 직면해 있을 것이고, 그 고민의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청소년과 마을을 만나게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마을에서 자란 청년들이 마을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는가 라는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품은 고민을 우회하지 않고 문제 상황에 들어가 또 다른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품은 청소년을, 나아가 지역을, 더 나아가 사회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규범에 갇힌 전문성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는 진정성을 가졌기에 품은 앞으로도 좀 더 나은 삶과 대안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의지처로 진화해갈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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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관
전 하자센터 소장이다. 하자센터 태동의 근거처럼 전효관 선생의 등장은 획일적이고 파편적인 청소년활동 분야의 해일과도 같다. 사회복지, 청소년지도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문화인류학, 사회학, 통일 분야의 전문가이며 학자였지만 결국은 연결되어야 할 근원적 뿌리들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품은 하자센터의 근원과 전효관 선생의 철학을 존중하며 또 배우고 있으며 전효관 선생 역시 품의 의도와 실천들을 존중해주니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