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품뉴스에는 ‘품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무당 심한기가 직접 찾아가거나 화상으로 만나보고 글을 쓰고 년 말 즈음에는
인터뷰 글을 모은 작은 책자를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2002년 온 나라가 들썩였던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그 해 여름, 품에서는 제11기 사회복지 실습도 월드컵 만큼 뜨겁게 흘러갔었다.
품의 실습은 당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청소년에 관심이 있었던 대학생들에게는 한번은 시도해볼 만한 도전이기도 했다.
거의 두 달 간의 실습기간은 물론 지역에서 온 실습생은 합숙을 해야 했고, 만만치 않은 교육과정으로 유명했었다.
그럼에도 많은 청년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서류와 면접을 보고 선발을 할 정도였다. 15명의 실습생 중에 신청기간 끝자락에 합류를 한 청년이 있었다.
고딩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에 경상도 사투리를 귀엽게 날렸던 그 청년의 이름은 최성임이다.
최성임주주의 품에서 활동 당시 사진
얼마 전 인터넷에서 그 반가운 이름을 다시 만났다.
“2021년 문화도시조성사업 김해문화인물”로 선정 된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품 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초대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딱 20년이 지난 오늘(2022년 2월 11일) 최성임 주주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20년이란 세월이 의심될 만큼 앳된 얼굴과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는 여전했고 마치 몇 달 전에 만났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최성임 주주가 품 실습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이 김해청소년문화의 집이다.
보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은 관련한 민간단체에 위탁을 하는데 이곳은 김해시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율권이 보장되기 보다는 많은 제약사항과 불편함들이 있다.
그럼에도 최성임 주주는 개관초기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그곳을 지켜가고 있다. 마치 품 30년의 역사와 서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20년이 넘게 한 자리에 있는 이유는 그냥 월급 받는 직장으로 버티기 또는 스스로의 의지의 힘으로 움틀거림이 멈추지 않은 경우인데
최성임 주주는 당연히 후자의 선택이었다.
초기에는 청소년들에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과 같은 존재 즉 청소년들에게 편안한 비빌언덕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해의 아이들은 대도시의 십대들과 비교하면 꽤 점잖은 편이며 잘 만들어진 멍석을 깔아줘야 잘 논다고 한다.
결국 학생인권조례가 아직도 통과되지 못한 김해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김해시 직영의 경직된 업무환경과 시의원 등등
지역의 정치적 입김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가며 문화의 집과 자신의 역할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려는 노력들이 느껴졌다.
최성임 주주는 요즘 청소년들은 자기가 써야 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분배하기에 성적이나 자기관리에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는 활동들은
당연히 소홀해졌다고 한다. 거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해청소년문화의집에서 코로나 시기 활동한 모습
20년 만에 대화였지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아이들 이야기, 문화의 집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모습을 보면 품의 실습생 때와 같은
청년의 마음과 에너지가 식지 않은 것 같았고 다른 한편으로 소박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곳감처럼 든든하고 깊어 보였다.
품 주주로서의 인연은 30대가 되어 품에게 뭔가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40대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품 주주로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7살 딸(수연), 8살 아들(보성)은 이미 참 ~맑은 물살캠프에 갈 나이가 되었다.
20년 이란 시간을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돌려보며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인연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성임 주주 가족사진
우리 최성임 주주와 품은 청소년, 청년, 스스로 가능한 삶의 의지와 실천이란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본다.
어여 코로나가 사라지고 주연과 보성이도 '참~맑은 물살 캠프'의 물살동이로 월학리 냇강을 뛰어다닐 그 날을 기대해본다.
2022년 품뉴스에는 ‘품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무당 심한기가 직접 찾아가거나 화상으로 만나보고 글을 쓰고 년 말 즈음에는
인터뷰 글을 모은 작은 책자를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2002년 온 나라가 들썩였던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그 해 여름, 품에서는 제11기 사회복지 실습도 월드컵 만큼 뜨겁게 흘러갔었다.
품의 실습은 당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청소년에 관심이 있었던 대학생들에게는 한번은 시도해볼 만한 도전이기도 했다.
거의 두 달 간의 실습기간은 물론 지역에서 온 실습생은 합숙을 해야 했고, 만만치 않은 교육과정으로 유명했었다.
그럼에도 많은 청년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서류와 면접을 보고 선발을 할 정도였다. 15명의 실습생 중에 신청기간 끝자락에 합류를 한 청년이 있었다.
고딩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에 경상도 사투리를 귀엽게 날렸던 그 청년의 이름은 최성임이다.
최성임주주의 품에서 활동 당시 사진
얼마 전 인터넷에서 그 반가운 이름을 다시 만났다.
“2021년 문화도시조성사업 김해문화인물”로 선정 된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품 30주년 기념 릴레이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초대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딱 20년이 지난 오늘(2022년 2월 11일) 최성임 주주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20년이란 세월이 의심될 만큼 앳된 얼굴과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는 여전했고 마치 몇 달 전에 만났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최성임 주주가 품 실습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이 김해청소년문화의 집이다.
보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은 관련한 민간단체에 위탁을 하는데 이곳은 김해시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율권이 보장되기 보다는 많은 제약사항과 불편함들이 있다.
그럼에도 최성임 주주는 개관초기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그곳을 지켜가고 있다. 마치 품 30년의 역사와 서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20년이 넘게 한 자리에 있는 이유는 그냥 월급 받는 직장으로 버티기 또는 스스로의 의지의 힘으로 움틀거림이 멈추지 않은 경우인데
최성임 주주는 당연히 후자의 선택이었다.
초기에는 청소년들에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과 같은 존재 즉 청소년들에게 편안한 비빌언덕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해의 아이들은 대도시의 십대들과 비교하면 꽤 점잖은 편이며 잘 만들어진 멍석을 깔아줘야 잘 논다고 한다.
결국 학생인권조례가 아직도 통과되지 못한 김해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김해시 직영의 경직된 업무환경과 시의원 등등
지역의 정치적 입김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가며 문화의 집과 자신의 역할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려는 노력들이 느껴졌다.
최성임 주주는 요즘 청소년들은 자기가 써야 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분배하기에 성적이나 자기관리에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는 활동들은
당연히 소홀해졌다고 한다. 거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해청소년문화의집에서 코로나 시기 활동한 모습
20년 만에 대화였지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아이들 이야기, 문화의 집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모습을 보면 품의 실습생 때와 같은
청년의 마음과 에너지가 식지 않은 것 같았고 다른 한편으로 소박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곳감처럼 든든하고 깊어 보였다.
품 주주로서의 인연은 30대가 되어 품에게 뭔가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40대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품 주주로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7살 딸(수연), 8살 아들(보성)은 이미 참 ~맑은 물살캠프에 갈 나이가 되었다.
20년 이란 시간을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돌려보며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인연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성임 주주 가족사진
우리 최성임 주주와 품은 청소년, 청년, 스스로 가능한 삶의 의지와 실천이란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본다.
어여 코로나가 사라지고 주연과 보성이도 '참~맑은 물살 캠프'의 물살동이로 월학리 냇강을 뛰어다닐 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