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활동] 파견 활동가의 품 알아가기 6. 품의 지역, 교육사업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1-07-25
조회수 332

2nd. 품의 지역, 교육사업

by. 하니


1. 들어가기: 품의 지역, 교육사업 알아가기
두 주에 걸쳐 품의 지역과 교육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품의 지역사업과 교육사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지역사업 안에도 교육사업이, 교육사업 안에도 지역사업이 존재한다. 지역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교육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무엇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품에 있어서 중요한 두 축이 되고 있다. 따라서 품의 지역과 교육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품의 커다란 흐름을 알아가는 노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물론 품의 지역사업과 교육사업이 서로 화살표를 주고받는 쌍방의 상호적인 관계임을 기억한다.


2. 지역 사업 이야기
품의 지역 이야기를 언뜻 생각하면, 추락, 지역-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문화예술아카데미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조각들이 만들어져 온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과정과 그 안에 담겨있는 연결 지점들, 가치 등을 고려해보면 그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노래품으로 시작해 정착하지 못했던 시절 ‘미아 2동’이라는 ‘지역’의 첫 발견, 10년 전 추락의 탄생, 학교와의 불안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라도 드문드문 이어져 온 만남, 그리고 2007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품의 지역 이야기에는 품의 역사와 함께 다양하고 도전적인 각종 실험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내용들 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꼭 기억해야할 부분을 지역, 축제, 문화예술지원(동아리지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정리해본다.


‘왜?’로 본질에 다가가기
품에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질문, “왜?”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을 갖는 일은 고인 물이 되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 물이 고인다는 것은 썩음을 의미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로 때때로 환기시켜주지 않고 정체하게 되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품이 지금까지 쉬지 않고 변화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 지역인가?
품이 끊임없이 강조해 온 ‘지역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으로만 지역의 의미를 한정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지와 무관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 한 쪽에 죽어라 지역의 중요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지역의 의미는 ‘일상’과 ‘실천’에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으로부터, 어디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꿈꾸는가에 따라 그 시선이 고정되는 지점들이 달라질 것이다.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실질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현실적인 실천, 또 다시 이어지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 단순히 추상적인 담론에 그치거나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역이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과 그 가능성, 이것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지역에, 공동체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왜 축제인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축제는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마음만 먹으면 셀 수 없이 많은 축제를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축제들이 나의 일상의 한부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세상의 대부분의 축제는 일상의 삶과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품에서 추구하는 축제는 좀 다르다. 사실 축제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설명을 보아도 축제를 일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바라보는 접근은 없다. 결국 품의 축제가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나머지 축제들이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제의 의미가 매우 축소되어 여가의 한 장으로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분명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연결되는 지점에 존재해야 하고, 그것이 ‘좀 더 특별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축제의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낸 축제라면, 지역 안에서 그 과정을 함께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관심과 일상의 삶을 어색하지 않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품에 축제를 통해 사업을 하는 이유는 그 소통의 기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품은 아이들의 삶에, 지역의 한 가운데에 추락이 깊이깊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이번에 아쉽게 끝난 학교 축제와의 연결도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꼭 필요한 도전 과제이었을 것이다.


왜 문화예술지원(동아리지원)인가?
‘문화’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 결국 문화를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사람에게 일상적 삶의 의미로 다가오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예술은 아마도 일상의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좀처럼 특별한 것 없이 똑같아 지는 ‘현대인’ 일상의 무미건조함의 정도를 어디까지 상상해야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어느 선까지 그 사람만의 삶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품은 특별히 자신만의 일상의 문화를 가지고 있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자기 삶의 문화에 있어서 주체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동아리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왔다. 분명 문화예술지원과 동아리지원을 동의어로 볼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는 비슷한 맥락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문화예술이라는 그릇으로 표현할 줄 알고, 또 그러한 문화예술은 동아리라는 작은 그릇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품의 한 회의에서 ‘동기화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동기화된 아이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일상을 자신들만의 문화로 꾸며나가려고 하는 이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해온 품.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글 하나를 떠올렸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 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그렇다고 ‘동기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커다란 파급효과, 실질적인 변화를 통한 더 큰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교육 사업 이야기


품의 역사만큼이나 초기의 각종 캠프나 추락 기획단을 위한 내부교육으로 시작된 품의 교육사업 역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품 교육사업의 중심으로 볼 수 있는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전_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궁극적으로 같은 지점을 바라보지만, 어느 한 해 판박이처럼 전 해와 똑같은 아카데미는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카데미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었다.


실험의 연속
앞서 말한 것처럼 품의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작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품의 '유난한'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대상도, 내용도, 또 전달 방식도 치열한 고민 끝에 필요하다면 바뀔 수 있었다. 처음 개인에서 시작되었던 대상은 좀 더 지속적인 실천에 힘을 싣기 위하여 팀 대상으로 바뀌었고, 사회복지라는 배경을 갖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문을 열었다. 내용도 복지적 측면에서 '자신만의', '아이들만의', '그 지역만의' 등등의 무궁무진한 일상의 문화가 새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여과 없이 인정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일상에서의 변화와 실천이 그러한 문화적인 접근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고민 역시 멈추지 않았다. 너무 무겁다 싶을 땐 실천과 이론의 전달 순서를 바꿔보기도, 또 때로는 실천을 위한 가벼움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품은 'how'로 지칭될 수 있는 각종 방법론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이러한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고 품이 고집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심한기 선생님의 강의록 제목을 빌려 '지역', '청소년', '문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되었다. 앞서 살펴본 모든 변화 역시 이 변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내년에는 아카데미를 통해 또 어떤 실험 정신이 발휘될지 궁금해진다.


‘청년’이라는 씨앗 심고 가꾸기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감의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의 변화가 존재한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의 변화, 한 발자국 나아감이 교육이 본래 가지고 있는 중요하고도 독특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지니는 가치와 가능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품의 교육사업 역시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품의 교육은 일방적으로 지식과 기술적인 성장을 요구하는 현대의 교육과는 다르다. 품은 그 사람이 스스로 흔들리고, 생각하고, 변화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이 품이 이야기하는 교육사업이다. 재미있는 점은 어느 순간부터 품이 키우고자하는 사람의 이상향에 '청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은 사전적인 의미의 특정한 연령대에 해당하는 이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청년은 품을 알기 전부터, 듣고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말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청년은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꿈꾸면서도, 치열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삶 안에서 이를 실현시키려고 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꿈꾸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데에 나이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청년이 많아질 때,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질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품은 교육사업을 통해 청년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과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4. 나오기: 기분 좋은 상상의 시작
지역을 정리하면서 시작한 상상은 ‘소소함’의 ‘위대함’에 대한 것이다.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은 지역 운동이나 풀뿌리 단체들을 여가를 활용해 사소한 일을 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활동들로 오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터전인 지역이란 매우 사소하거나 무의미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 사소하지 않지만 소소한 일상에서의 움직임과 그러한 움직임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많아지는 지점이 내가 즐겁게 상상하는 지역의 모습이다.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는 ‘나’에 대한 상상을 해본다. 품이 키우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꿈을 잃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과 품 안에서 함께 하기 위해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품의 사람 흔들기에 동참하고 싶다면 내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사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품 안에서 들어온 "당신은 문화적인 사람입니까?"라는 질문과도, 그리고 교육사업을 공부하면서 접하게 된 위대한 거부와 self-so를 실천하는 사람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다짐하고 생각한 것들을 즉시 행동에 옮길 수 있다면, 아니 열 가지 중에 두세 가지라도 꾸준하게 해낼 수 있다면 분명 내 삶도, 내 주위의 문화도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나, 그리고 지체 없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나, 이것이 내가 꿈꾸는 현재의 나의 모습인 것 같다.


긍정적인 상상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커다란 숲을 보게 되기도, 또 때로는 작지만 중요한 나무를 감지하기도 한다. 상상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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