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1106 품 알아가기 네번째 이야기
by 하니 :)
20071101 '국경을 넘어선 문화예술교육' 07_08 문화예술교육 세미나 Ⅱ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_에 대한 이야기.
지난 11월 1일,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품의 현희쌤이 네팔 PUM 사례발표를 했던 세미나 후에,
이에 대해 함께 나눈 이야기들과 저의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 쉽지 않은 내용에 정리하는데 생각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늦은 나눔이지만, 시작해봅니다.
문화+예술+교육, 너는 누구냐?!
많은 것들에 있어서 이름은 그 정체성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사실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분야는
새롭게 꿈꾸기 시작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느낌의 것이다.
뭔가 대안적이다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했던 나의 생각들이
품과 만나게 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구체화 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키워드들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을 단숨에 이해해 내기란 말도 안되는 일일 수 있겠다 싶다.
문화, 예술, 교육.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이름이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와, 갈래, 의미, 가능성을 안고 있는 이름들이 세 개나 모여있으니,
꽤나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이 이름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내게 필요한 공부가 되겠지.
경계에 선 문화예술교육
현희쌤의 말처럼, 세미나 자료집에 원고를 쓴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 이란 주제를 대하는 시각은 각각 조금씩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주희 선생님 글의 경우, 그 생각의 출발선 자체가 나의 그것과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쌍방향성과 자기 주도성"이라는 전제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일까.
그 전제가 깔려있을 때 문화예술교육은 긍정적 방향의 전지구화 현상을 이끌어내는
중심적 역할을 훌륭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그 전제는 쉽게 마련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제 심쌤은 세계화의 어두운 부분이 만들어내는 현상과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NGO의 역할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술에 더 큰 비중을 두거나, 두지 않거나 하는 개념적인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분명히 서로 다른 경계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화예술교육이 담고 있는 다양성과 복합적인 성질 만큼이나 그 갈래와 경계 역시
단일화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그 갈래들의 연결 지점을 잘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교류'를 위한 사전작업, '교육'
그 날 현희쌤이 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했던 "쌍방향성과 자기 주도성"이라는 전제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승미 선생님도 "문화예술교육의 저변확대"라는 이야기로 풀어놓으셨다.
이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도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책의 제목처럼, '희망의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빵 또는 밥'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
품이 이야기하는 네팔에서의 문화예술교육운동이 다른 문화예술교육 교류사업들과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빵 또는 밥'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나는 '빵 또는 밥'에 관심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의 '빵과 밥'이 해결되는 문제는 그들의 생명과 존재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빵을 해결한 후에 교육과 문화를 생각하면 늦는다. 함께 가야한다."라는 품의 생각에
정말 200% 공감한다. 그러기에 이리도 복잡한 이 지점에 서있는게 아닐까.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갈래들의 접점을 찾아 가는 것처럼,
또 다른 경제적 원조 분야들과 '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찾는 것
이 역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처럼 느껴진다.
더하기, 품을 알아간다는 것은_
책상 한켠에 한권씩 두권씩 쌓여서 이제는 품에 관한 책들이 꽤 모여있다.
지난 10월 13일 처음 품 알아가기 일기를 쓴 이후 딱 한 달이 지났다.
언제부터인가_
틈만 나면 자동적으로 품과 관련된 책들 중 하나를 집어 아무곳이나 펼쳐 읽게 된다.
그러다가 몇 일 전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쌓여 가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지난 품의 16년 이라는 시간을
내가 또 너무 억지스럽게 내 머리에 마음에 가득가득 채우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다고 아직 내가 품 식구라는 소속감이 크게 생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_
마음과 머리가 동시에 비슷한 비율로 잘 채워져 가면 참 좋으련만,
나에게는 보통의 경우 따로 가서 문제이다.
이번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니 마음이 비어 가는 걸 몰랐나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지금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품에 대한 내 '마음'속의 진정한 관심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걸 순간 깨닫게 되니 아차 싶어서, '
관심'의 마음으로 읽었던 내용들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흠, 식구라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일이라 믿으며_
내일부터 시작될 바쁘게 이어질 날들에
진정한 관심의 마음과 치열한 노력을 보태보리라 다짐해본다.^ ^
# 20071106 품 알아가기 네번째 이야기
by 하니 :)
20071101 '국경을 넘어선 문화예술교육' 07_08 문화예술교육 세미나 Ⅱ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_에 대한 이야기.
지난 11월 1일,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품의 현희쌤이 네팔 PUM 사례발표를 했던 세미나 후에,
이에 대해 함께 나눈 이야기들과 저의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 쉽지 않은 내용에 정리하는데 생각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늦은 나눔이지만, 시작해봅니다.
문화+예술+교육, 너는 누구냐?!
많은 것들에 있어서 이름은 그 정체성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사실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분야는
새롭게 꿈꾸기 시작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느낌의 것이다.
뭔가 대안적이다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이기만 했던 나의 생각들이
품과 만나게 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구체화 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키워드들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을 단숨에 이해해 내기란 말도 안되는 일일 수 있겠다 싶다.
문화, 예술, 교육.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이름이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와, 갈래, 의미, 가능성을 안고 있는 이름들이 세 개나 모여있으니,
꽤나 골치가 아프게 생겼다.
이 이름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내게 필요한 공부가 되겠지.
경계에 선 문화예술교육
현희쌤의 말처럼, 세미나 자료집에 원고를 쓴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 이란 주제를 대하는 시각은 각각 조금씩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주희 선생님 글의 경우, 그 생각의 출발선 자체가 나의 그것과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쌍방향성과 자기 주도성"이라는 전제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일까.
그 전제가 깔려있을 때 문화예술교육은 긍정적 방향의 전지구화 현상을 이끌어내는
중심적 역할을 훌륭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그 전제는 쉽게 마련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제 심쌤은 세계화의 어두운 부분이 만들어내는 현상과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NGO의 역할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술에 더 큰 비중을 두거나, 두지 않거나 하는 개념적인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분명히 서로 다른 경계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화예술교육이 담고 있는 다양성과 복합적인 성질 만큼이나 그 갈래와 경계 역시
단일화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그 갈래들의 연결 지점을 잘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교류'를 위한 사전작업, '교육'
그 날 현희쌤이 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했던 "쌍방향성과 자기 주도성"이라는 전제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승미 선생님도 "문화예술교육의 저변확대"라는 이야기로 풀어놓으셨다.
이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도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책의 제목처럼, '희망의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빵 또는 밥'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
품이 이야기하는 네팔에서의 문화예술교육운동이 다른 문화예술교육 교류사업들과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빵 또는 밥'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나는 '빵 또는 밥'에 관심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의 '빵과 밥'이 해결되는 문제는 그들의 생명과 존재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빵을 해결한 후에 교육과 문화를 생각하면 늦는다. 함께 가야한다."라는 품의 생각에
정말 200% 공감한다. 그러기에 이리도 복잡한 이 지점에 서있는게 아닐까.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갈래들의 접점을 찾아 가는 것처럼,
또 다른 경제적 원조 분야들과 '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찾는 것
이 역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과제처럼 느껴진다.
더하기, 품을 알아간다는 것은_
책상 한켠에 한권씩 두권씩 쌓여서 이제는 품에 관한 책들이 꽤 모여있다.
지난 10월 13일 처음 품 알아가기 일기를 쓴 이후 딱 한 달이 지났다.
언제부터인가_
틈만 나면 자동적으로 품과 관련된 책들 중 하나를 집어 아무곳이나 펼쳐 읽게 된다.
그러다가 몇 일 전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자연스럽게 쌓여 가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지난 품의 16년 이라는 시간을
내가 또 너무 억지스럽게 내 머리에 마음에 가득가득 채우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다고 아직 내가 품 식구라는 소속감이 크게 생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_
마음과 머리가 동시에 비슷한 비율로 잘 채워져 가면 참 좋으련만,
나에게는 보통의 경우 따로 가서 문제이다.
이번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니 마음이 비어 가는 걸 몰랐나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지금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품에 대한 내 '마음'속의 진정한 관심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걸 순간 깨닫게 되니 아차 싶어서, '
관심'의 마음으로 읽었던 내용들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흠, 식구라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일이라 믿으며_
내일부터 시작될 바쁘게 이어질 날들에
진정한 관심의 마음과 치열한 노력을 보태보리라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