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들려주는 "happy village project" 이야기 : 과정 일지
이야기둘. 행복한 마을 만들기 과정 일지 ㅣ강명숙,이하니
1. 첫 번째 주민 설명회
• 2008년 5월 19일 오후 3시부터 5시 ㅣ모노하라 학교 운동장
• 품 심한기, 강명숙, 이하니, 디퍽 럼쌀(통역)
• 학교교사와 아이들, 마을주민, 마을 청년등 약 40여명 참가
엔지오 품이 학교 도착했을 때는 학교교사와 품과 친분이 이었던 몇몇 마을 사람들만이 반가운 환영인사를 했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에 조금은 불안했던 교장 선생님은 약속한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은 마을사람들과 청년들에게 전화를 하기 바쁘셨다. 하지만 네팔에서 정확한 약속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와도 같다. 그들의 시간에 대한 문화도 그렇지만 베시톨과 같이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 오후 시간에 짬을 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찾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노동력으로 작년에 시작된 학교 2층 건물의 건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본 건축은 마무리되었으나 문과 창문 그리고 페인트 도색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 건축은 값싼 벽돌과 시멘트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가능했으나, 재료값이 만만치 않은 교실문짝과 창문, 그리고 페인트 도색은 손도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2층 건축에 품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9월에 모노하라에 다시 방문할 나눔학교(정신지체 장애 청소년 대안학교)와 상의하여, 2층 교실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과 허물어져가는 학교의 담장을 보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엔지오 품은 학교 담장을 아예 허물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그것은 현재 네팔의 현실과 문화를 간과한 이상적인 의견임을 확인했다.
네팔에서 학교의 담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기에 물을 막기도 하고, 가축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학교의 장비와 가구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넉넉지 않은 네팔의 학부모들에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학교의 담장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위안의 방어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학교 담장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좋은 샘플이 있다며 우리를 근처 대학의 교문으로 안내했다.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보여준 샘플답게 대학의 담장은 답답하지 않으면서 튼튼해 보였다. 아직도 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교사, 마을 대표, 몇몇 마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속한 시간에 1시간이 넘어서야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품을 만나는 몇몇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은 매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품의 대표는 능숙한 한국어 솜씨와 상황판단이 너무도 빠른 통역자원봉사자인 디퍽의 도움을 받아 이번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의도와 배경을 설명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매우 쉬운 단어와 간간히 재미난 농담을 섞어가며, 진행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설명에 박수를 치기도 하고, 환한 웃음(이렇게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모습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 그 사진을 배경으로 행사의 현수막으로 제작하였다)으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몇몇 마을 청년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교사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외부인들이 학교와 마을을 찾아와 먼가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스스로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몇 일후 다시한번 마을 청년들과 주민들과의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설명회가 끝나고 마을 청년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네팔어가 가능한 엔지오 품의 스텝인 이하니를 둘러싸고, 많은 질문과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전체 주민 설명회가 끝난 후 마을의 썬저이와 꺼머리라는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품이 마을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크게 이삼일 동안의 프로젝트 동안의 프로그램과 좀 더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자신들이 바라는 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설명회 사진)
2. 두 번째 주민 설명회
• 0528 10:40 am- 12:00 pm ㅣ모너허라 학교 2층 교실
• 품 심한기, 이하니, 앙 상게 셰르파
• 학교 교사와 아이들, 마을 어른들, 청년 등 60-70명 정도 참여
기존 베시톨(마을)에서 현장 프로젝트 진행을 시작하기로 이야기 되었던 28일, 네팔의 정치적인 상황(5월 28일은 네팔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그 체제가 변화하는 역사적인 시작점의 날이었음)으로 인해 많은 인원의 이동이 불가능해졌고, 심쌤, 하니, 상게 세 명만이 모너허라 학교로 향했다. 이전에 28일에 만나기로 했던 마을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들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는 주민 설명회 자리가 한 번 더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날 프로젝트 자체가 베시톨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카트만두에서는 한-네팔 청년 문화 실천 워크샵 참가자들(이하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의 베시톨 현장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는 점과 베시톨 주민들 역시 높은 관심을 보이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현장 프로젝트 작업을 위해 필요한 마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대나무를 미리 준비하는 일 등)을 보았을 때, 이 날 역시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서 전체 프로젝트에 있어서 충분한 의미가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날 아이들을 포함해 60-70명 정도의 마을 사람들이 두 번째 주민 설명회를 위해 함께 했다. 첫 번째 주민 설명회와 비교했을 때 더욱 특별했던 것은 지금까지 만나볼 수 없었던 청년들이 새롭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참여하는 마을 청년들의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는 점이었다(5월은 한참 농사를 짓는 철이라,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적인 요소가 있었음). 처음에는 20명 정도의 청년들로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에 들어와 함께 하기 시작한 청년들까지 모두 합하면 30-40명 정도가 이 자리에 함께 하였다.
두 번째 주민 설명회에서 품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제안에 대해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앞에서 말하고 설득하는 작업은 품이 했지만, 이미 베시톨의 청년과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이후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움직임으로 이어짐)
이 날의 자리는 베시톨에서의 품의 지속적인 활동 및 그것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마을 사람들의 참여의지를 새롭게 다지고 약속하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당장의 프로젝트에서의 할 수 있는 일들과 그 이후 마을과 품이 지속적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일들로 나뉘어 논의 되었다. 당장의 프로젝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 내에서 논의된 사항을 품이 소개하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품의 제안에 대해 마을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였고, 이에 따라 계획은 수정되기도,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함께 참여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었다. 특히 주민 설명회가 끝난 이후에도 세부 준비에 대해 청년들과 몇몇 어른들이 계속 남아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고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틀간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는 프로젝트 이후 마을과 품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다면, 마을에 중요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도서관 짓기를 함께 해볼 수도 있고, 주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사 웤샵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품이 마을과 계속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나누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품도 마을도 앞으로의 과정에 대한 진실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다음 날 시작될 프로젝트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즐겁게 함께 일해 볼 것을 약속하며, 이 날의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설명회 사진)
3.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작전 모이
#1.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모이다 [5월 25일]
베시톨 마을의 학교, 지역주민, 마을청년들과 더불어 Happy Village Project를 위한 다른 한 축이 있다.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일상, 청소년, 지역사회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모노허라에서 실천하고 과정과 의미를 한국과 네팔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이다. 양국의 청년들은 올 3월부터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을 공유, 합의하고 양국의 문화, 역사, 사회 등을 이해하며 모노허라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사전워크숍을 2달에 걸쳐 가지면서 자발적 동기를 만들었다. 이들 역시 지금의 프로젝트 이후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과 연결하여 청년문화운동을 이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5월 25일 드디어 양국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측 참가자들이 입구에 들어서자 네팔측 참가자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띠까와 꽃목걸이로 환영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첫 만만나의 공간에 들어서자 참가자 모두의 프로파일과 색상지가 함께 붙여져 있었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로에게 기대하는 점, 첫 인상에 대해 한마디씩 적기 시작했다. 언어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편안한 문 열기가 시작되었다. 의자가 없는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품의 심한기 대표와 공동주관하고 있는 네팔단체 TYA의 대표가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네팔의 젊은 예술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Happy Vibration이 다시 한 번 음악으로 환영의 마음을 전했다.
다음 한국-네팔의 예술가와 예술가,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스트 등이 짝을 이뤄 계란을 이용한 즐거운 놀이시간을 가졌다. 쏟아지는 웃음으로 서로의 낯설음은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분위기를 전환하여 각자가 준비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네팔의 여성 저널리스트인 우셔씨는 네팔최조의 여성저널리스트로 18년간 활동하면서 있었던 한 사례를 통해 기자는 어려움을 무릎 쓰더라도 진실을 전달해야 함을 말했다. 이주빈님은 펜이 자신의 생명이며, 밥줄이라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돈과 권력과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김월식선생은 ‘Art is Process, Media is tool’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했다. 박성희양과 김범준군 만들어온 PPT로 자신을 소개하며, 여기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기보다 차차 같이 지내면서 알아가고 싶다고 했다. 수베디선생은 자신이 살아오신 역사를 간단히 말씀하시며 직접 만드신 동요한곡을 불러주셨다. 심한기선생은 품과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과의 카르마를 글과 사진 그리고 자신의 노래로 이야기했고, Happy Vibration은 자신의 그림으로 예술로써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그들의 생각을 전달해 주었다. 산족은 자신의 살아온 과거와 노래한곡을 선사했다. 판과 니란전은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으로, 임지은님은 카메라가 자신의 삶임을, 강명숙과 이하니 역시 자기 삶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야기를 했다.
약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자기소개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양국의 청년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앞으로 함께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설레임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2년간 네팔에서 활동을 해 왔던 품은 지금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오프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형식적인 말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보다 집중하였기 때문에 오프닝 형식역시 변화될 수 있었다.
(관련 사진 추가)
#2. (학교를 중심으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3일간의 작전모이
[5월 26일 : 네팔스러움의 중요성과 직관에 대한 통찰]
26일날 워크숍 참가자 외에 3명의 네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합류하였다. 한국네팔 예술가 9명, 저널리스트 2명, 다큐작가 2명, 사진작가 1명, 품 4명, TYA 1명, 네팔인 자문 1명, 통역 2명 총 22명이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모두가 모이자 우뇌열기부터 시작했다. 2명씩 짝을 이뤄 손 마사지를 하며 서로의 체온을 느꼈고 웃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항상 좌뇌(이성)에 눌려있는 우뇌(감성)를 열기시작하자, 22명의 사람들의 관계도 한층 편안해졌다.
Happy Village Project은 각 영역별로 맡은 역할이 분명하다. 한국과 네팔의 젊은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획 및 진행하고 다큐작가는 영상으로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저널리스트는 기사로 과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록을 담당한다. 한국 네팔의 젊은 예술가들이 Happy Village Project의 구체적인 계획세우기에 앞서, 예술과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연결시키기 흔들리지 않은 중심점을 두기 위해 김월식선생의 인덕원 프로젝트와 외국 사례들을 통해 가장 네팔스러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Happy Village Project가 베시톨에 지나가는 바람과 같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전달했다. 이것은 예술가들이 작품자체(물질)에 보다 예술가들의 태도와 정신(가치)이 더욱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점심시간 이후, 다음단계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성들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보는 ‘직관에 대한 통찰’에 대한 시간을 가졌다. 각자 20Rs씩 들고 시장으로 나가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것, 자신의 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것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직관에 따라 사오고, 그 이유를 말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접근을 해보는 과정을 가졌다. 이는 모노허라에서 진행될 ‘Happy Village Project’를 하기에 앞서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접근함에서 오는 오류들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풀어낼 수 있게 하기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어떤 사람은같이 먹어야 정이 쌓인다는 한국의 정서에 따라 쌀을 사오고, 네팔국기와 마늘로 지금의 네팔이 마늘처럼 합쳐져야 하는 순간임을 표현하기도 했다. 서로가 사온 물건의 이유를 모두 설명한 후, 자신이 사온 선물을 다른 이에게 주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가 아름답게 엮이는 순간 이었다.
(관련 사진)
[5월 27일 :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 한국 사람과 네팔 사람]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한국사람과 네팔사람이라는 4개의 다른 단위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Happy Village Project가 결과가 아니라 앞을 위한 과정으로서 마을의 활성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과 네팔 참가자들은 실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노하라 마을사람, 마을청년, 학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사와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마을청년은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마을과 학교의 변화를 위해 앞으로의 활동의 동기화를 마련하는 것, 지역주민은 지지와 앞으로의 참여 동기를 위한 이해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천방향이었다. 실천방향을 머리에 염두 해 두고 참가자들은 현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든 생각을 쏟아내기로 하였고, 논의의 집중을 위해 2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생각 쏟아내기는 점심시간 이후까지 진행되었다. 2팀이 낸 생각은 총 18가지의 생각이었다. 오후에는 18가지의 생각들 중에서 비슷한 생각을 합치고, 현실가능하며 실천방향을 표현해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7가지 생각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가졌다
(관련 사진)
[5월 28일 :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와 최종 준비]
사실 원래의 계획은 28일부터 모노허라에서 Happy Village Project가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8일 하루 더 계획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유는 28일은 네팔이 왕정체제에서 공화국체제로 변하는 역사적인 날이었고, 네팔의 모든 차량운행, 가게 등 대부분이 운영을 멈추고 그 결과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카트만두 외곽지역에 있는 모노허라로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28일은 두 팀으로 나뉘어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 팀은 모노허라에서 두 번째 주민설명회를 갖고 7개의 계획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돌아왔다. 주민 설명회 후 베시톨의 청년, 마을주민, 학교가 계획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가져왔고 참가자들은 더욱 기대를 가지고 계획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한 팀은 아침부터 전날 결정된 7개의 생각을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에 들어갔다. 7개의 계획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마을 지도 만들기, 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보기 위한 학교 간판 만들기, 교실 안 게시판 만들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깃발에 그리고 학교에 세우기, 화분 만들기, 학교 교사 및 청년들에게 아이들과 쉽게 놀 수 있는 놀이 알려주기와 앞으로 생길 학교 도서관에 둘 Happy Village Project 사진집 등이다.
참가자들은 7개의 큰 틀거리를 결정한 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세부계획에 들어갔다. 각 계획별로 구체적인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 담당자를 정하고, 마을청년, 마을주민, 교사 및 아이들이 어느 계획에 몇 명이 함께 할지,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전지 한 장에 모든 내용을 담은 스케쥴링 표를 그렸다. 이 과정에 참가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제한적으로 변해가는 생각을 김월식선생님이 피드백으로 참가자들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도록 했고, 계획에 필요한 재료역시 베시톨 밖에서 모두 구입해 가는 것이 아니라, 베시톨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계획이 모두 끝이 나고 참가자들은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시장으로 출발하며 Happy Village Project를 위한 계획이 마무리 되었고, 내일 아침 7시에 모이기로 하였다. 이 사이 영상, 사진, 기사는 계속 기록이 되고 있었으나 한국측 참가자들만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네팔 측 다큐작가는 방관적인 자세로 앉아있을 뿐 촬영을 하지 않았고, 저널리스트는 바쁘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관련 사진)
4. 행복한 마을 만들기 첫날 _ 0529 09:00 am
#1. 늦은 첫 시작(오프닝 세러모니: 짧은 동네 청소)과 작은 환영식
네팔의 아침 식사 시간인 10시 즈음에 주민들이 모인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던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은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인 후에 학교 주변을 짧게 한 바퀴 돌면서(20분 정도의 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을 알리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세러모니로 그 시작을 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의 환영의 마음이 담겨있는 네팔 전통 방식의 작은 환영식(띠까와 꽃목걸이)도 함께 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모인 한국과 네팔 사람, 그리고 베시톨 안과 밖의 사람이 처음 만나서 하나 되는 시작을 알리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관련 사진)
#2. 지도 만들기를 위한 길고 긴 과정의 첫 시작
이날의 작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그 중 한 그룹은 마을 지도 만들기를 위한 사전 조사 작업을 맡았다. 오전 중에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과 마을 청년들이 함께 하나의 팀이 되어서 마을 지도 만들기를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 들어갔다. 마을의 구역을 나누어 각각의 팀이 사전 조사를 하였고, 이 과정은 단순히 현재의 상황이나 환경을 조사하는 것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각자가 마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망들도 꺼내어 볼 수 있게 하는 시간(미래에 자신들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특히,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마을 청년들의 참여는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신들이 살아 온 곳을 돌아보며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은 마을 청년들에게 그들의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 이후 프로젝트 과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한 청년은 이 과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생각들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어서 기뻤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베시톨 집집마다의 방문은 우리가 이틀 동안 그리고 앞으로 이 마을에서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마을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오후에는 이러한 작업 끝에 모아진 자료를 놓고 참여했던 인원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각 그룹이 수집한 자료를 하나로 합치는 길고 긴 논의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고, 깊이가 느껴지는 모든 이들의 관심과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은 이후 완성될 지도의 모습에 대한 자연스런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관련 사진)
#3. 아이들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들
베시톨 주민들 중 중요한 한 부분은 바로 아이들이다. 품이 처음 베시톨을 만나게 되었던 것도 모너허라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이 날 작업의 두 번째 그룹은 모너허라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진행하게 될 팀이었다. 이 역시 한-네팔 청년 참가자(박성희, 산족 라이)와 마을 청년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전은 네팔 놀이와 한국 놀이를 하나씩 돌아가며 신나게 놀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시 꾸밈없이 제일 신나게 노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처음에 마을 청년들과 교사들에게 놀이를 알려주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던 의도는 조금 빗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이 ‘어떻게 노는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고, 이 시간 이후부터 꼭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몇몇 청년,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언제든지 놀이를 시작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가깝거나 먼 자신들의 미래를 꿈꿔보며 그 상상을 하얀 깃발에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놀이만큼이나 아이들은 역시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관련 사진)
#4. 다음 날을 기약하며
하루의 전체적인 흐름은 계속해서 자연스러움의 연속이었다. 5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음 날은 해야 할 작업들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9시 반에 늦지 않고 함께 하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청년들에게 남기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이때는 아무도 다음 날 어떤 장면이 펼쳐져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모두들 뜨거운 날씨에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각자에게 있어서의 무언가 의미를 새기는 듯 한 모습이었다.
5. 행복한 마을 만들기 둘째 날 (행복한 마을 선포식과 마을 잔치)_ 0530 09:30 am
#1. 첫째 날과는 사뭇 달랐던 시작 풍경
아침 식사를 조금 일찍 하고 모두 가능하면 제 시간에 모였으면 좋겠다는 마을 청년들과의 소통도 있었고, 하루를 경험하고 난 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실행했던 교사, 마을 주민들, 청년들의 실천이 함께 하여 둘째 날의 시작 분위기는 첫째 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전 날 청년들과의 논의에서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되었던, 학교 옥상의 화분 심기나 전 날 아이들이 작업했던 꿈 깃발 세우기 등은 준비가 아닌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어 있었고, 수리를 하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려고 계획했던 우리의 생각을 함께 나누었던 마을 분들은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을 말끔하게 고쳐놓으셨다. 이렇게 하여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 하루 종일 청년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 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돌아간 후에도 계속 남아 준비했던 축제를 위한 세팅(우리나라 운동회 때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도착한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음)등은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그들의 실질적인 관심과 고민, 실천(참여)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고, 덕분에 이미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으며 우리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모두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관련 사진)
#2.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
이렇게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모두 각자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네팔 청년 참가자들 중 김범준과 람 머헐전은 전 날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를 기초로 실제 지도 그리는 작업에 하루 종일 열중하였다. 앙상게 셰르파와 치락 써이주 역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모너허라 학교의 간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몇몇 마을 청년들과 웤샵 청년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학교 꾸미기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교실 게시판을 만든다든가, 화장실 문 및 학교 곳곳에 있는 시설물들을 페인팅하는 작업은 모두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한데 모여 즐겁게 작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날 특별히 한국의 아티스트인 김월식님은 모너허라 학교를 위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작업하여 학교에 선물로 남기기도 하였다.
(관련 사진- 여러장)
이러한 작업들 외에 마을 잔치를 위한 여러 세팅들은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과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저녁에 깜짝 영화 상영을 위한 커다란 스크린 설치를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담은 타임 캡슐을 묻기 위해 땅을 파고,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하는 것 등 모두 쉽지 않은 일들을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들이 이 과정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관련 사진 - 여러장)
#3. 삶 깊숙이 시작되는 진정한 축제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멘트 없이도 마을은 이미 하루 동안 축제 분위기이었고, 본격적인 마을 잔치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의 잔치, 파티를 떠올려보면, 누군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관객이 엄격하게 분리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날 베시톨에서의 마을 잔치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흥겨운 노래와 춤,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리되지 않은 일상이 그대로 축제가 되었다. 마을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마을 사람들이었다. 모든 일을 편안하고 익숙하게 진행해나가는 힘은 그 마을 사람들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 손님, 그리고 마을 어른들 순서로 이어진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눈 저녁 식사 역시 소란스럽지 않게 모너허라 학교 선생님들과 청년들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러운 마을 잔치 흐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관련 사진)
이렇게 진행되었던 하루의 축제를 매년 베시톨 마을 사람들이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내년 축제의 이날에 열어볼 것을 기약하며 베시톨의 타임 캡슐을 땅에 묻는 간단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할 것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소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 날 마을 많은 이들의 소망이 담긴 항아리는 상징적인 의미로 땅에 묻었지만, 이 날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각자의 소망 하나씩이 소중하게 자리 잡았으리라 믿는다. 이 날 하루 취재 나온 Today's Youth Asia(TYA)의 한 기자는 저렇게 했을 때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에 당신은 평소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질문했다. 소망 상자를 통해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기 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소망들을 꺼내어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같은 맥락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당장에 개개인의 일상과 마을에 무언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줄 수는 없겠지만 그 자체로 자신들의 일상과 가능성을 새롭게 돌아보고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번에 우리가 이 곳 베시톨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4. 마을 사람들이 바로 삶의 주인공
이 날의 마을 잔치를 위해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 중 다큐 작가로 참여했던 김판중과 사진작가로 참여했던 임지은이 준비했던 특별한 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담은 영상 편지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귀한 땀을 흘려 찍었던 마을 사람들의 사진(특히 사진작가 임지은님은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가족사진 찍는 작업을 이틀 동안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직접 오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도 우리 프로젝트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고, 임지은님의 말처럼 길게 보았을 때는 그들의 삶의 모습과 과정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도 있었다)이 합쳐진 한 편의 단편 영화였다. 이날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그들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일상이 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서 충분히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시작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난생 처음 자신들이 주인공이 된 영상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이 날 진정 그들이 마을의 주인이고 자신들의 삶의 주인공임을 실천하려는 뜻 깊은 움직임도 함께 있었다. 마지막에 청년 대표 격인 썬저이라는 친구는 상기된 목소리로 지금부터 청년 조직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관심 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음날 아침까지 학교로 모이자는 이야기로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시작을 알렸다.
#5. 즐거웠던만큼 아쉬웠던 마지막
품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베시톨과 함께 하겠지만, 짧았던 이틀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는 마지막과 헤어짐을 늘 그렇듯 서운한 분위기였다. 청년들은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을 한국 측 청년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해왔고, 조금이라도 더 무언가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만은 감사히 받은 채, 럭시(네팔 전통 술) 한잔씩에 그 아쉬움을 달랬다. 아쉬웠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헤어짐의 시간이었다.
네팔에서 들려주는 "happy village project" 이야기 : 과정 일지
이야기둘. 행복한 마을 만들기 과정 일지 ㅣ강명숙,이하니
1. 첫 번째 주민 설명회
• 2008년 5월 19일 오후 3시부터 5시 ㅣ모노하라 학교 운동장
• 품 심한기, 강명숙, 이하니, 디퍽 럼쌀(통역)
• 학교교사와 아이들, 마을주민, 마을 청년등 약 40여명 참가
엔지오 품이 학교 도착했을 때는 학교교사와 품과 친분이 이었던 몇몇 마을 사람들만이 반가운 환영인사를 했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에 조금은 불안했던 교장 선생님은 약속한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은 마을사람들과 청년들에게 전화를 하기 바쁘셨다. 하지만 네팔에서 정확한 약속시간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와도 같다. 그들의 시간에 대한 문화도 그렇지만 베시톨과 같이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 오후 시간에 짬을 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찾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노동력으로 작년에 시작된 학교 2층 건물의 건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본 건축은 마무리되었으나 문과 창문 그리고 페인트 도색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 건축은 값싼 벽돌과 시멘트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가능했으나, 재료값이 만만치 않은 교실문짝과 창문, 그리고 페인트 도색은 손도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을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2층 건축에 품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9월에 모노하라에 다시 방문할 나눔학교(정신지체 장애 청소년 대안학교)와 상의하여, 2층 교실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과 허물어져가는 학교의 담장을 보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엔지오 품은 학교 담장을 아예 허물자는 의견을 내었으나 그것은 현재 네팔의 현실과 문화를 간과한 이상적인 의견임을 확인했다.
네팔에서 학교의 담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기에 물을 막기도 하고, 가축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학교의 장비와 가구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넉넉지 않은 네팔의 학부모들에게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학교의 담장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위안의 방어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학교 담장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좋은 샘플이 있다며 우리를 근처 대학의 교문으로 안내했다.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보여준 샘플답게 대학의 담장은 답답하지 않으면서 튼튼해 보였다. 아직도 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교사, 마을 대표, 몇몇 마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속한 시간에 1시간이 넘어서야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품을 만나는 몇몇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은 매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품의 대표는 능숙한 한국어 솜씨와 상황판단이 너무도 빠른 통역자원봉사자인 디퍽의 도움을 받아 이번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의도와 배경을 설명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매우 쉬운 단어와 간간히 재미난 농담을 섞어가며, 진행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설명에 박수를 치기도 하고, 환한 웃음(이렇게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모습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 그 사진을 배경으로 행사의 현수막으로 제작하였다)으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몇몇 마을 청년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교사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외부인들이 학교와 마을을 찾아와 먼가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스스로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몇 일후 다시한번 마을 청년들과 주민들과의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설명회가 끝나고 마을 청년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네팔어가 가능한 엔지오 품의 스텝인 이하니를 둘러싸고, 많은 질문과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전체 주민 설명회가 끝난 후 마을의 썬저이와 꺼머리라는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품이 마을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크게 이삼일 동안의 프로젝트 동안의 프로그램과 좀 더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자신들이 바라는 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설명회 사진)
2. 두 번째 주민 설명회
• 0528 10:40 am- 12:00 pm ㅣ모너허라 학교 2층 교실
• 품 심한기, 이하니, 앙 상게 셰르파
• 학교 교사와 아이들, 마을 어른들, 청년 등 60-70명 정도 참여
기존 베시톨(마을)에서 현장 프로젝트 진행을 시작하기로 이야기 되었던 28일, 네팔의 정치적인 상황(5월 28일은 네팔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그 체제가 변화하는 역사적인 시작점의 날이었음)으로 인해 많은 인원의 이동이 불가능해졌고, 심쌤, 하니, 상게 세 명만이 모너허라 학교로 향했다. 이전에 28일에 만나기로 했던 마을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들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는 주민 설명회 자리가 한 번 더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날 프로젝트 자체가 베시톨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카트만두에서는 한-네팔 청년 문화 실천 워크샵 참가자들(이하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의 베시톨 현장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는 점과 베시톨 주민들 역시 높은 관심을 보이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현장 프로젝트 작업을 위해 필요한 마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대나무를 미리 준비하는 일 등)을 보았을 때, 이 날 역시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서 전체 프로젝트에 있어서 충분한 의미가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날 아이들을 포함해 60-70명 정도의 마을 사람들이 두 번째 주민 설명회를 위해 함께 했다. 첫 번째 주민 설명회와 비교했을 때 더욱 특별했던 것은 지금까지 만나볼 수 없었던 청년들이 새롭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참여하는 마을 청년들의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는 점이었다(5월은 한참 농사를 짓는 철이라,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적인 요소가 있었음). 처음에는 20명 정도의 청년들로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에 들어와 함께 하기 시작한 청년들까지 모두 합하면 30-40명 정도가 이 자리에 함께 하였다.
두 번째 주민 설명회에서 품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제안에 대해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앞에서 말하고 설득하는 작업은 품이 했지만, 이미 베시톨의 청년과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이후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움직임으로 이어짐)
이 날의 자리는 베시톨에서의 품의 지속적인 활동 및 그것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마을 사람들의 참여의지를 새롭게 다지고 약속하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당장의 프로젝트에서의 할 수 있는 일들과 그 이후 마을과 품이 지속적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일들로 나뉘어 논의 되었다. 당장의 프로젝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 내에서 논의된 사항을 품이 소개하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품의 제안에 대해 마을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였고, 이에 따라 계획은 수정되기도,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함께 참여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었다. 특히 주민 설명회가 끝난 이후에도 세부 준비에 대해 청년들과 몇몇 어른들이 계속 남아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고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틀간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는 프로젝트 이후 마을과 품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다면, 마을에 중요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도서관 짓기를 함께 해볼 수도 있고, 주민들이 그토록 원하는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사 웤샵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품이 마을과 계속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나누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품도 마을도 앞으로의 과정에 대한 진실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다음 날 시작될 프로젝트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즐겁게 함께 일해 볼 것을 약속하며, 이 날의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설명회 사진)
3.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작전 모이
#1.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모이다 [5월 25일]
베시톨 마을의 학교, 지역주민, 마을청년들과 더불어 Happy Village Project를 위한 다른 한 축이 있다.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일상, 청소년, 지역사회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모노허라에서 실천하고 과정과 의미를 한국과 네팔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이다. 양국의 청년들은 올 3월부터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을 공유, 합의하고 양국의 문화, 역사, 사회 등을 이해하며 모노허라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사전워크숍을 2달에 걸쳐 가지면서 자발적 동기를 만들었다. 이들 역시 지금의 프로젝트 이후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과 연결하여 청년문화운동을 이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5월 25일 드디어 양국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측 참가자들이 입구에 들어서자 네팔측 참가자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띠까와 꽃목걸이로 환영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첫 만만나의 공간에 들어서자 참가자 모두의 프로파일과 색상지가 함께 붙여져 있었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로에게 기대하는 점, 첫 인상에 대해 한마디씩 적기 시작했다. 언어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편안한 문 열기가 시작되었다. 의자가 없는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품의 심한기 대표와 공동주관하고 있는 네팔단체 TYA의 대표가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네팔의 젊은 예술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Happy Vibration이 다시 한 번 음악으로 환영의 마음을 전했다.
다음 한국-네팔의 예술가와 예술가,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스트 등이 짝을 이뤄 계란을 이용한 즐거운 놀이시간을 가졌다. 쏟아지는 웃음으로 서로의 낯설음은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분위기를 전환하여 각자가 준비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네팔의 여성 저널리스트인 우셔씨는 네팔최조의 여성저널리스트로 18년간 활동하면서 있었던 한 사례를 통해 기자는 어려움을 무릎 쓰더라도 진실을 전달해야 함을 말했다. 이주빈님은 펜이 자신의 생명이며, 밥줄이라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돈과 권력과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김월식선생은 ‘Art is Process, Media is tool’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했다. 박성희양과 김범준군 만들어온 PPT로 자신을 소개하며, 여기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기보다 차차 같이 지내면서 알아가고 싶다고 했다. 수베디선생은 자신이 살아오신 역사를 간단히 말씀하시며 직접 만드신 동요한곡을 불러주셨다. 심한기선생은 품과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과의 카르마를 글과 사진 그리고 자신의 노래로 이야기했고, Happy Vibration은 자신의 그림으로 예술로써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그들의 생각을 전달해 주었다. 산족은 자신의 살아온 과거와 노래한곡을 선사했다. 판과 니란전은 자신이 만들었던 작품으로, 임지은님은 카메라가 자신의 삶임을, 강명숙과 이하니 역시 자기 삶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야기를 했다.
약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자기소개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양국의 청년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앞으로 함께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설레임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2년간 네팔에서 활동을 해 왔던 품은 지금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오프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형식적인 말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보다 집중하였기 때문에 오프닝 형식역시 변화될 수 있었다.
(관련 사진 추가)
#2. (학교를 중심으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3일간의 작전모이
[5월 26일 : 네팔스러움의 중요성과 직관에 대한 통찰]
26일날 워크숍 참가자 외에 3명의 네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합류하였다. 한국네팔 예술가 9명, 저널리스트 2명, 다큐작가 2명, 사진작가 1명, 품 4명, TYA 1명, 네팔인 자문 1명, 통역 2명 총 22명이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모두가 모이자 우뇌열기부터 시작했다. 2명씩 짝을 이뤄 손 마사지를 하며 서로의 체온을 느꼈고 웃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항상 좌뇌(이성)에 눌려있는 우뇌(감성)를 열기시작하자, 22명의 사람들의 관계도 한층 편안해졌다.
Happy Village Project은 각 영역별로 맡은 역할이 분명하다. 한국과 네팔의 젊은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획 및 진행하고 다큐작가는 영상으로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저널리스트는 기사로 과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록을 담당한다. 한국 네팔의 젊은 예술가들이 Happy Village Project의 구체적인 계획세우기에 앞서, 예술과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연결시키기 흔들리지 않은 중심점을 두기 위해 김월식선생의 인덕원 프로젝트와 외국 사례들을 통해 가장 네팔스러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Happy Village Project가 베시톨에 지나가는 바람과 같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전달했다. 이것은 예술가들이 작품자체(물질)에 보다 예술가들의 태도와 정신(가치)이 더욱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점심시간 이후, 다음단계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성들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보는 ‘직관에 대한 통찰’에 대한 시간을 가졌다. 각자 20Rs씩 들고 시장으로 나가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것, 자신의 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것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직관에 따라 사오고, 그 이유를 말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접근을 해보는 과정을 가졌다. 이는 모노허라에서 진행될 ‘Happy Village Project’를 하기에 앞서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접근함에서 오는 오류들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풀어낼 수 있게 하기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어떤 사람은같이 먹어야 정이 쌓인다는 한국의 정서에 따라 쌀을 사오고, 네팔국기와 마늘로 지금의 네팔이 마늘처럼 합쳐져야 하는 순간임을 표현하기도 했다. 서로가 사온 물건의 이유를 모두 설명한 후, 자신이 사온 선물을 다른 이에게 주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가 아름답게 엮이는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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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 한국 사람과 네팔 사람]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한국사람과 네팔사람이라는 4개의 다른 단위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Happy Village Project가 결과가 아니라 앞을 위한 과정으로서 마을의 활성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과 네팔 참가자들은 실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노하라 마을사람, 마을청년, 학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사와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마을청년은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마을과 학교의 변화를 위해 앞으로의 활동의 동기화를 마련하는 것, 지역주민은 지지와 앞으로의 참여 동기를 위한 이해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천방향이었다. 실천방향을 머리에 염두 해 두고 참가자들은 현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배제하고 모든 생각을 쏟아내기로 하였고, 논의의 집중을 위해 2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생각 쏟아내기는 점심시간 이후까지 진행되었다. 2팀이 낸 생각은 총 18가지의 생각이었다. 오후에는 18가지의 생각들 중에서 비슷한 생각을 합치고, 현실가능하며 실천방향을 표현해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7가지 생각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가졌다
(관련 사진)
[5월 28일 :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와 최종 준비]
사실 원래의 계획은 28일부터 모노허라에서 Happy Village Project가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8일 하루 더 계획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유는 28일은 네팔이 왕정체제에서 공화국체제로 변하는 역사적인 날이었고, 네팔의 모든 차량운행, 가게 등 대부분이 운영을 멈추고 그 결과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카트만두 외곽지역에 있는 모노허라로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28일은 두 팀으로 나뉘어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 팀은 모노허라에서 두 번째 주민설명회를 갖고 7개의 계획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돌아왔다. 주민 설명회 후 베시톨의 청년, 마을주민, 학교가 계획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가져왔고 참가자들은 더욱 기대를 가지고 계획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한 팀은 아침부터 전날 결정된 7개의 생각을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에 들어갔다. 7개의 계획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마을 지도 만들기, 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보기 위한 학교 간판 만들기, 교실 안 게시판 만들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깃발에 그리고 학교에 세우기, 화분 만들기, 학교 교사 및 청년들에게 아이들과 쉽게 놀 수 있는 놀이 알려주기와 앞으로 생길 학교 도서관에 둘 Happy Village Project 사진집 등이다.
참가자들은 7개의 큰 틀거리를 결정한 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세부계획에 들어갔다. 각 계획별로 구체적인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 담당자를 정하고, 마을청년, 마을주민, 교사 및 아이들이 어느 계획에 몇 명이 함께 할지,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전지 한 장에 모든 내용을 담은 스케쥴링 표를 그렸다. 이 과정에 참가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제한적으로 변해가는 생각을 김월식선생님이 피드백으로 참가자들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도록 했고, 계획에 필요한 재료역시 베시톨 밖에서 모두 구입해 가는 것이 아니라, 베시톨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계획이 모두 끝이 나고 참가자들은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시장으로 출발하며 Happy Village Project를 위한 계획이 마무리 되었고, 내일 아침 7시에 모이기로 하였다. 이 사이 영상, 사진, 기사는 계속 기록이 되고 있었으나 한국측 참가자들만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네팔 측 다큐작가는 방관적인 자세로 앉아있을 뿐 촬영을 하지 않았고, 저널리스트는 바쁘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관련 사진)
4. 행복한 마을 만들기 첫날 _ 0529 09:00 am
#1. 늦은 첫 시작(오프닝 세러모니: 짧은 동네 청소)과 작은 환영식
네팔의 아침 식사 시간인 10시 즈음에 주민들이 모인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던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은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인 후에 학교 주변을 짧게 한 바퀴 돌면서(20분 정도의 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을 알리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세러모니로 그 시작을 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의 환영의 마음이 담겨있는 네팔 전통 방식의 작은 환영식(띠까와 꽃목걸이)도 함께 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모인 한국과 네팔 사람, 그리고 베시톨 안과 밖의 사람이 처음 만나서 하나 되는 시작을 알리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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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도 만들기를 위한 길고 긴 과정의 첫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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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들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들
베시톨 주민들 중 중요한 한 부분은 바로 아이들이다. 품이 처음 베시톨을 만나게 되었던 것도 모너허라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이 날 작업의 두 번째 그룹은 모너허라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진행하게 될 팀이었다. 이 역시 한-네팔 청년 참가자(박성희, 산족 라이)와 마을 청년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전은 네팔 놀이와 한국 놀이를 하나씩 돌아가며 신나게 놀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시 꾸밈없이 제일 신나게 노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처음에 마을 청년들과 교사들에게 놀이를 알려주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던 의도는 조금 빗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이 ‘어떻게 노는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고, 이 시간 이후부터 꼭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몇몇 청년,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언제든지 놀이를 시작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가깝거나 먼 자신들의 미래를 꿈꿔보며 그 상상을 하얀 깃발에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놀이만큼이나 아이들은 역시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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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날을 기약하며
하루의 전체적인 흐름은 계속해서 자연스러움의 연속이었다. 5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음 날은 해야 할 작업들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9시 반에 늦지 않고 함께 하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청년들에게 남기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이때는 아무도 다음 날 어떤 장면이 펼쳐져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모두들 뜨거운 날씨에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각자에게 있어서의 무언가 의미를 새기는 듯 한 모습이었다.
5. 행복한 마을 만들기 둘째 날 (행복한 마을 선포식과 마을 잔치)_ 0530 09:30 am
#1. 첫째 날과는 사뭇 달랐던 시작 풍경
아침 식사를 조금 일찍 하고 모두 가능하면 제 시간에 모였으면 좋겠다는 마을 청년들과의 소통도 있었고, 하루를 경험하고 난 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실행했던 교사, 마을 주민들, 청년들의 실천이 함께 하여 둘째 날의 시작 분위기는 첫째 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전 날 청년들과의 논의에서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되었던, 학교 옥상의 화분 심기나 전 날 아이들이 작업했던 꿈 깃발 세우기 등은 준비가 아닌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어 있었고, 수리를 하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려고 계획했던 우리의 생각을 함께 나누었던 마을 분들은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을 말끔하게 고쳐놓으셨다. 이렇게 하여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 하루 종일 청년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 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돌아간 후에도 계속 남아 준비했던 축제를 위한 세팅(우리나라 운동회 때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도착한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음)등은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그들의 실질적인 관심과 고민, 실천(참여)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고, 덕분에 이미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으며 우리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모두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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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
이렇게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모두 각자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네팔 청년 참가자들 중 김범준과 람 머헐전은 전 날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를 기초로 실제 지도 그리는 작업에 하루 종일 열중하였다. 앙상게 셰르파와 치락 써이주 역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모너허라 학교의 간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몇몇 마을 청년들과 웤샵 청년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학교 꾸미기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교실 게시판을 만든다든가, 화장실 문 및 학교 곳곳에 있는 시설물들을 페인팅하는 작업은 모두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한데 모여 즐겁게 작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날 특별히 한국의 아티스트인 김월식님은 모너허라 학교를 위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작업하여 학교에 선물로 남기기도 하였다.
(관련 사진- 여러장)
이러한 작업들 외에 마을 잔치를 위한 여러 세팅들은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과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저녁에 깜짝 영화 상영을 위한 커다란 스크린 설치를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담은 타임 캡슐을 묻기 위해 땅을 파고,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하는 것 등 모두 쉽지 않은 일들을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들이 이 과정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즐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관련 사진 - 여러장)
#3. 삶 깊숙이 시작되는 진정한 축제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멘트 없이도 마을은 이미 하루 동안 축제 분위기이었고, 본격적인 마을 잔치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의 잔치, 파티를 떠올려보면, 누군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관객이 엄격하게 분리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날 베시톨에서의 마을 잔치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흥겨운 노래와 춤,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리되지 않은 일상이 그대로 축제가 되었다. 마을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마을 사람들이었다. 모든 일을 편안하고 익숙하게 진행해나가는 힘은 그 마을 사람들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 손님, 그리고 마을 어른들 순서로 이어진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눈 저녁 식사 역시 소란스럽지 않게 모너허라 학교 선생님들과 청년들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러운 마을 잔치 흐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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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행되었던 하루의 축제를 매년 베시톨 마을 사람들이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내년 축제의 이날에 열어볼 것을 기약하며 베시톨의 타임 캡슐을 땅에 묻는 간단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할 것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소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 날 마을 많은 이들의 소망이 담긴 항아리는 상징적인 의미로 땅에 묻었지만, 이 날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각자의 소망 하나씩이 소중하게 자리 잡았으리라 믿는다. 이 날 하루 취재 나온 Today's Youth Asia(TYA)의 한 기자는 저렇게 했을 때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에 당신은 평소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질문했다. 소망 상자를 통해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기 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소망들을 꺼내어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같은 맥락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당장에 개개인의 일상과 마을에 무언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줄 수는 없겠지만 그 자체로 자신들의 일상과 가능성을 새롭게 돌아보고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번에 우리가 이 곳 베시톨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4. 마을 사람들이 바로 삶의 주인공
이 날의 마을 잔치를 위해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 중 다큐 작가로 참여했던 김판중과 사진작가로 참여했던 임지은이 준비했던 특별한 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담은 영상 편지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귀한 땀을 흘려 찍었던 마을 사람들의 사진(특히 사진작가 임지은님은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가족사진 찍는 작업을 이틀 동안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직접 오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도 우리 프로젝트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고, 임지은님의 말처럼 길게 보았을 때는 그들의 삶의 모습과 과정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도 있었다)이 합쳐진 한 편의 단편 영화였다. 이날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그들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일상이 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서 충분히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시작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난생 처음 자신들이 주인공이 된 영상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이 날 진정 그들이 마을의 주인이고 자신들의 삶의 주인공임을 실천하려는 뜻 깊은 움직임도 함께 있었다. 마지막에 청년 대표 격인 썬저이라는 친구는 상기된 목소리로 지금부터 청년 조직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관심 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음날 아침까지 학교로 모이자는 이야기로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시작을 알렸다.
#5. 즐거웠던만큼 아쉬웠던 마지막
품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베시톨과 함께 하겠지만, 짧았던 이틀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는 마지막과 헤어짐을 늘 그렇듯 서운한 분위기였다. 청년들은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을 한국 측 청년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해왔고, 조금이라도 더 무언가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만은 감사히 받은 채, 럭시(네팔 전통 술) 한잔씩에 그 아쉬움을 달랬다. 아쉬웠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헤어짐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