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으로서의 손님, 네팔 ‘품’ 이야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라는 단체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9월부터 12월까지 6회에 걸쳐 지난 20년의 오류와 성찰을 공유하는 릴레이 워크숍을 열고 있다. 워크숍에서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는 네팔 품이 현지활동을 통해 그곳 사람들을 돕거나 무언가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을 넘어서며 만들어온 소박한 대안도 포함되어 있다. ODA Watch는 코빌 이창덕 활동가와 함께 네팔 품 에서 5년간 쌓아온 내공을 풀어놓기 위해 한국을 잠시 찾은 이하니 활동가를 만났다.
이창덕 활동가: 품이라는 단체도 생소한데 네팔 품은 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품에 대한 설명 부탁합니다.
이하니 활동가: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1992년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문제중심적, 보호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흔들며 생긴 울림의 힘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도록 청소년문화활동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북에서 유명한 ‘강북마을장터’나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라고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품은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는 이와 같은 활동으로 문화적 소통과 실천을 통해 청소년 함께 성장하는 마을을 만들고자 20년을 달려왔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 왔다기보다는 청소년들과 재미나게 놀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었다고나 할까요!
이창덕 활동가: 강북 쪽에서 쭉 놀던(?) 품이 어떻게 네팔까지 가게 되었나요?
이하니 활동가: 계획이나 사전조사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지난 2005년 품의 심한기대표님이 개인적으로 떠난 배낭여행에서부터 네팔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네팔에서 돌아온 뒤 대표님은 네팔 품을 제안했지만 사무국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활동 만으로도 과도한 업무라는 의견과 왜 우리가 네팔에 가야 하는가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차가 존재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저희 대표님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웃음) 결국 2006년 품 사무국의 모든 직원들이 네팔로 가게 됩니다. 모두 마음으로 네팔을 만나서 교감하게 되었고, 누구의 설명이나 제안 없이도 자연스럽게 네팔과 품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준비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가 아닌 여행으로 시작된 네팔과 품의 운명적 만남
이창덕 활동가: 그 후 네팔 품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해 오고 있나요?
이하니 활동가: 일단 품이 활동하고 있는 베시마을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약 80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는 네팔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죠. 품은 우선 첫 사업으로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3년 간 우리의 공교육과 비슷한 네팔교육을 문화예술로 건드려 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문화예술워크숍을 실시했습니다. 그렇지만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을 적용했던 접근방식과 상호적 성장이 불가능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표면적인 자극만이 주어졌을 뿐 궁극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죠. 반성과 고민을 안겨준 뼈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최근 개도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국의 개발 경험을 전수하겠다는 취지로 한국형 발전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일방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일각의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품 또한 네팔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하니 활동가: 네팔 품에는 처절한 경험을 통한 반성이 있었고, 이를 통해 매우 큰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사실 네팔 품은 베시 마을과 함께 활동을 했었지만, 카트만두에 사무소를 두고 운영했었는데요. 논의 끝에 2006년부터 4년간 운영된 카트만두 사무소를 닫고 베시 마을에서 함께 살며 그들의 일상과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적 접근’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접근’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무조건적으로 마을로 들어가려 했던 것은 아니고요. 2007년 마을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 품이 활동하고 있는 베시마을에서 Happy School Project를 진행한 후 마을을 다시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고만 했던 주민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학교를 증축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함께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죠. 자연스레 마을과 무언가 연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베시 마을로 들어간 이후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졌나요?
이하니 활동가: 2008년 청년문화예술실천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계획을 수립하고 Happy Village Project라는 이름으로 베시마을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특별한 활동이 아닌 마을 청년들과 외부의 청년들이 함께 가가호호 방문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을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접근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을축제로 주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 이었으니까요.
이후 축제를 통해 자극 받은 마을 청년 30여명이 모임을 만들고 마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청년들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물로 작은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마을신문이 발행되고 마을을 위한 캠페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베시마을 청년들이 옆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청년들이 스스로를 흔들고 마을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한 것이군요. 그런데 흔히들 단기 혹은 장기로 국제자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들은 주로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말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활동가 개인만의 성장을 뛰어넘어 타인들을 향한 변화로 확장성을 갖는 것이라고 보는데요. 지난 5년 간 이하니 활동가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하니 활동가: 일단 개인적으로는 분명한 배움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각이 넓어졌습니다. 마을사람들 덕분이자 동시에 품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고집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꽤 유연해 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베시마을의 청년들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숫자로 보면 소수만이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청년들 안에 주체성이 생겨났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커멀리라는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 회계학을 전공한 친구인데 처음에는 여느 개도국 청년들처럼 INGO나 큰 회사에 들어가야 지만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네팔도 한국처럼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오랫동안 자기가 자란 마을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공하기 위해 기계 틈바구니 안에서 일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혼한 다음에도 계속 베시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다른 마을에 가서도 베시에서처럼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말이죠.
이때 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만의 성장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에게 그 청년은 하나의 롤모델이 되고 있고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간 가운데 방황하고 떠나간 청년들도 있었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덕 활동가: 국제개발 현장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들 중 하나가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지? 차라리 우리가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것인데요. 지금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선배 활동가로서 조언을 좀 해 주시죠.
이하니 활동가: 저도 그 고민 참 많이 한 것 같아요. 사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제일 좋은 방법은 개도국 사람들이 외부로 향한 문을 다 닫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와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품은 네팔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문화를 함께 지켜내려 합니다.
활동가 개인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모든 관계와 소통은 상호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 아니냐'라는 발상은 우리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개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충분한 고민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지나치게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하는 이들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도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우리가 활동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이창덕 활동가: 말씀을 들으니 저는 그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활동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카트만두 수도에 사무소를 두고 활동할 때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하니 활동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차이 아닐까요?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는 "이거 진짜 대단한 변화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마을에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소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마을에서 지내보니 굉장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저의 경우 마을에 살며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을 밖에서 활동한다고 가짜라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저는 삶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어떤 활동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데 그것이 일시적 현상이거나 말뿐인 것이 아닌 삶으로 녹아나는 활동이었으면 했던 것이죠.
이창덕 활동가: 네팔에도 한국의 많은 NGO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여느 NGO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품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하니 활동가: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활동가들은 품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웃음) 대부분의 국제개발NGO들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드웨어가 필요없다 혹은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꿔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번은 네팔에서 활동하는 개발NGO모임에서 품의 사례를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이후 학교를 짓는 활동을 주로 하는 모 재단의 지부장님께서 오셔서 "지난번 품의 활동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 우리 손으로 다 하려니 학교 하나 짓는 게 참 어려웠는데 하나씩 하나씩 현지인들에게 맡겼더니 참 잘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현재 돌아가고 있는 사업 전체를 바꾸기 보다는 어떠한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관점을 살짝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창덕 활동가: 반성과 성찰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자화자찬도 잘 하시는군요.(웃음) 대단하십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네팔 품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하니 활동가: 저희도 처음에는 여느 조직처럼 활동의 목표를 세웠었어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가 먼저 정하는 목표의 한계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마을을, 공동체를 꿈꾸는지를 질문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도우며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품은 이제 베시마을에서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마을 주민, 청년들과 행복한 마을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언제까지 마을에 머물 것인가 역시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주인으로서 손님으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활동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철저한 자기 성찰을 담담히 이야기 할 수 있는 활동가와 그런 사람을 키워내는 단체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단체의 이름과 비전이 달라도 우리들이 해야만 하는 역할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네팔의 교육자인 수베디 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한다.
“품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주인으로서의 손님, 네팔 ‘품’ 이야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라는 단체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9월부터 12월까지 6회에 걸쳐 지난 20년의 오류와 성찰을 공유하는 릴레이 워크숍을 열고 있다. 워크숍에서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는 네팔 품이 현지활동을 통해 그곳 사람들을 돕거나 무언가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을 넘어서며 만들어온 소박한 대안도 포함되어 있다. ODA Watch는 코빌 이창덕 활동가와 함께 네팔 품 에서 5년간 쌓아온 내공을 풀어놓기 위해 한국을 잠시 찾은 이하니 활동가를 만났다.
이창덕 활동가: 품이라는 단체도 생소한데 네팔 품은 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품에 대한 설명 부탁합니다.
이하니 활동가: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1992년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문제중심적, 보호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흔들며 생긴 울림의 힘으로 세상을 흔들 수 있도록 청소년문화활동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북에서 유명한 ‘강북마을장터’나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라고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품은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는 이와 같은 활동으로 문화적 소통과 실천을 통해 청소년 함께 성장하는 마을을 만들고자 20년을 달려왔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 왔다기보다는 청소년들과 재미나게 놀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이었다고나 할까요!
이창덕 활동가: 강북 쪽에서 쭉 놀던(?) 품이 어떻게 네팔까지 가게 되었나요?
이하니 활동가: 계획이나 사전조사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지난 2005년 품의 심한기대표님이 개인적으로 떠난 배낭여행에서부터 네팔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네팔에서 돌아온 뒤 대표님은 네팔 품을 제안했지만 사무국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활동 만으로도 과도한 업무라는 의견과 왜 우리가 네팔에 가야 하는가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차가 존재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저희 대표님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웃음) 결국 2006년 품 사무국의 모든 직원들이 네팔로 가게 됩니다. 모두 마음으로 네팔을 만나서 교감하게 되었고, 누구의 설명이나 제안 없이도 자연스럽게 네팔과 품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준비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가 아닌 여행으로 시작된 네팔과 품의 운명적 만남
이창덕 활동가: 그 후 네팔 품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해 오고 있나요?
이하니 활동가: 일단 품이 활동하고 있는 베시마을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약 80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는 네팔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죠. 품은 우선 첫 사업으로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3년 간 우리의 공교육과 비슷한 네팔교육을 문화예술로 건드려 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문화예술워크숍을 실시했습니다. 그렇지만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을 적용했던 접근방식과 상호적 성장이 불가능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표면적인 자극만이 주어졌을 뿐 궁극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죠. 반성과 고민을 안겨준 뼈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최근 개도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국의 개발 경험을 전수하겠다는 취지로 한국형 발전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일방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일각의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품 또한 네팔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하니 활동가: 네팔 품에는 처절한 경험을 통한 반성이 있었고, 이를 통해 매우 큰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사실 네팔 품은 베시 마을과 함께 활동을 했었지만, 카트만두에 사무소를 두고 운영했었는데요. 논의 끝에 2006년부터 4년간 운영된 카트만두 사무소를 닫고 베시 마을에서 함께 살며 그들의 일상과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적 접근’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접근’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무조건적으로 마을로 들어가려 했던 것은 아니고요. 2007년 마을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 품이 활동하고 있는 베시마을에서 Happy School Project를 진행한 후 마을을 다시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고만 했던 주민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학교를 증축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함께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죠. 자연스레 마을과 무언가 연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베시 마을로 들어간 이후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졌나요?
이하니 활동가: 2008년 청년문화예술실천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계획을 수립하고 Happy Village Project라는 이름으로 베시마을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특별한 활동이 아닌 마을 청년들과 외부의 청년들이 함께 가가호호 방문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을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접근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을축제로 주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 이었으니까요.
이후 축제를 통해 자극 받은 마을 청년 30여명이 모임을 만들고 마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청년들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물로 작은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마을신문이 발행되고 마을을 위한 캠페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베시마을 청년들이 옆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창덕 활동가: 청년들이 스스로를 흔들고 마을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한 것이군요. 그런데 흔히들 단기 혹은 장기로 국제자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들은 주로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말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활동가 개인만의 성장을 뛰어넘어 타인들을 향한 변화로 확장성을 갖는 것이라고 보는데요. 지난 5년 간 이하니 활동가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하니 활동가: 일단 개인적으로는 분명한 배움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각이 넓어졌습니다. 마을사람들 덕분이자 동시에 품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고집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꽤 유연해 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베시마을의 청년들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숫자로 보면 소수만이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청년들 안에 주체성이 생겨났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커멀리라는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 회계학을 전공한 친구인데 처음에는 여느 개도국 청년들처럼 INGO나 큰 회사에 들어가야 지만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네팔도 한국처럼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오랫동안 자기가 자란 마을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공하기 위해 기계 틈바구니 안에서 일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혼한 다음에도 계속 베시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다른 마을에 가서도 베시에서처럼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말이죠.
이때 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만의 성장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에게 그 청년은 하나의 롤모델이 되고 있고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간 가운데 방황하고 떠나간 청년들도 있었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덕 활동가: 국제개발 현장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들 중 하나가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지? 차라리 우리가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것인데요. 지금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선배 활동가로서 조언을 좀 해 주시죠.
이하니 활동가: 저도 그 고민 참 많이 한 것 같아요. 사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제일 좋은 방법은 개도국 사람들이 외부로 향한 문을 다 닫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와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품은 네팔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문화를 함께 지켜내려 합니다.
활동가 개인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모든 관계와 소통은 상호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 아니냐'라는 발상은 우리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개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충분한 고민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지나치게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하는 이들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도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우리가 활동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이창덕 활동가: 말씀을 들으니 저는 그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활동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카트만두 수도에 사무소를 두고 활동할 때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하니 활동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차이 아닐까요?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는 "이거 진짜 대단한 변화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마을에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소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마을에서 지내보니 굉장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저의 경우 마을에 살며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을 밖에서 활동한다고 가짜라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저는 삶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어떤 활동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데 그것이 일시적 현상이거나 말뿐인 것이 아닌 삶으로 녹아나는 활동이었으면 했던 것이죠.
이창덕 활동가: 네팔에도 한국의 많은 NGO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여느 NGO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품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하니 활동가: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활동가들은 품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웃음) 대부분의 국제개발NGO들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드웨어가 필요없다 혹은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꿔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번은 네팔에서 활동하는 개발NGO모임에서 품의 사례를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이후 학교를 짓는 활동을 주로 하는 모 재단의 지부장님께서 오셔서 "지난번 품의 활동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 우리 손으로 다 하려니 학교 하나 짓는 게 참 어려웠는데 하나씩 하나씩 현지인들에게 맡겼더니 참 잘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현재 돌아가고 있는 사업 전체를 바꾸기 보다는 어떠한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관점을 살짝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창덕 활동가: 반성과 성찰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자화자찬도 잘 하시는군요.(웃음) 대단하십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네팔 품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하니 활동가: 저희도 처음에는 여느 조직처럼 활동의 목표를 세웠었어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가 먼저 정하는 목표의 한계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마을을, 공동체를 꿈꾸는지를 질문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도우며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품은 이제 베시마을에서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마을 주민, 청년들과 행복한 마을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언제까지 마을에 머물 것인가 역시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주인으로서 손님으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활동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철저한 자기 성찰을 담담히 이야기 할 수 있는 활동가와 그런 사람을 키워내는 단체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단체의 이름과 비전이 달라도 우리들이 해야만 하는 역할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네팔의 교육자인 수베디 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한다.
“품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다.”